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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선거 정리 - 1987년(1)

LaMer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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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8번의 대선, 9번의 총선, 그리고 8번의 지선을 경험했습니다. 

그 결과가 때로는 기쁨과 환희를, 때로는 패배의 쓰라림과 절망감을 주곤 했죠. 

저도 개인적으로 벌써 선거를 치른 횟수를 따져보니까 재보선을 제외하면 총 12번의 전국단위 투표를 경험했네요.

 

오늘은 그 첫번째로 1987년 대통령 선거 결과를 통계로 보면서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1노 3김, 특히 양김의 분열로 민주진영 입장에서는 참 아픈 패배였는데요 이게 결국 3당합당까지 이어진걸 보면 더 그렇습니다.

(참고로 1992년 선거 다룰 때 3당합당이 어느 지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도 분석해볼 예정이에요)

 

우선 전국 단위 득표율만 따져보겠습니다.

 

 

 

시도명 후보자별 득표수
후보자별 득표율 (%)
민주정의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김영삼
평화민주당
김대중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합계 36.64 28.03 27.04 8.06

 

전국단위로 놓고 보면 우선 노태우 후보가 유일하게 30%를 넘기면서 2위와는 약 8% 차이로 당선되었는데요, 2위와 3위의 차이는 불과 1%였습니다. 참고로 노태우의 당선 득표율은 헌정 사상 최소 득표율인데요, 그만큼 양김 분열의 후폭풍이 컸다는 반증입니다.

 

그럼 권역별로 놓고 보면 도대체 어땠길래 이런 결과과 나왔을지 한번 보겠습니다. 

 

1. 수도권

 

시도명 후보자별 득표수
후보자별 득표율 (%)
민주정의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김영삼
평화민주당
김대중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서울 29.95 29.14 32.62 8.2
인천 39.35 29.99 21.3 9.2
경기 41.44 27.54 22.3 8.51

 

우선 서울은 김대중 후보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서울 17개 구에서 김대중 후보는 15개구를 휩쓸면서 승리했는데, 그런거 치고는 득표율이 생각보다 높지가 않습니다.

김대중 후보가 당시 4자필승론을 내세우며 승리를 자신했던 이유가 서울에 호남 원적자가 많기 때문에 서울에서는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이 컸는데... 그 차이가 기대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치였습니다. 참고로 김대중 후보가 패배한 2개 구가 강남구(지금의 강남+서초), 강동구(송파+강동)였는데 이 2개구에서는 2위도 아닌 3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막상 그 승리한 15개구 가운데 제일 큰 격차가 관악구에서 10%를 겨우 넘는 정도였으니 김대중 후보 입장에서는 실망이 많이 컸을 겁니다.

* 강남3구와 용산은 나중에 따로 다루겠습니다

 

그리고 인천과 경기는 똑같이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순으로 승자가 정해졌고 득표율 차이도 꽤나 여유있게 노태우 후보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경기도에서는 노태우 후보가 과천시(김영삼 1위), 성남시, 광명시(이상 김대중 1위)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여유있게 이겼고 특히 경기북부와 시골 지역에서는 5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압도했습니다. 당시에는 1기 신도시가 생기지도 않았고 지금에 비해 서울의 직접 영향을 받는 수도권의 범위가 극히 좁았죠. 

 인천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여기는 당시 4개구(중구, 남구, 북구, 동구)를 노태우 후보가 싹쓸이를 했습니다. 북구(지금의 계양+부평)에서만 30%대를 기록하고 나머지 구에서는 전부 40%를 여유있게 넘겼죠.(당시에는 직할시 체제라서 옹진, 강화는 경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서울, 인천, 경기의 득표수 총합을 따지면 다음과 같습니다.

 

노태우 : 3,213,245

김영삼 : 2,686,225

김대중 : 2,657,555

김종필 : 784,580

 

노태우 후보가 수도권에서 2위권 후보와 50만표 이상 격차를 벌리면서 1위를 차지했는데요, 당시에는 서울 인구가 인천+경기 합친것보다 더 많았음에도 노태우 후보가 인천/경기에서 상대적으로 몰표를 받고, 김대중 후보는 반대로 이 2곳에서 3위에 그치면서 이와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2. 충청권

 

시도명 후보자별 득표수
후보자별 득표율 (%)
민주정의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김영삼
평화민주당
김대중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충북 46.89 28.23 10.97 13.52
충남 26.22 16.06 12.42 45.03

 

김종필 후보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던 충청권이었는데 여기도 예상과는 꽤나 달랐습니다. 우선 김종필 후보의 고향인 충남의 경우 김종필 후보가 1위를 하긴 했는데 50%는 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여기서 1위를 했다는게 위안이죠. 세부적으로 보면 천원군(지금 천안시의 읍면 지역입니다)을 제외하고는 모두 1위를 차지했고 고향인 부여에서는 74%의 득표율을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득표율이 저정도에 그친 이유는 최대도시인 대전에서 40%를 넘기지 못했던게 컸습니다.

 

더 놀라운건 충북의 결과였는데 여기서는 김종필 후보가 2위도 아닌 3위, 그것도 15%도 넘기지 못했죠. 반대로 노태우 후보가 거의 과반에 가까운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는데 특히 경북 인접지역(제천, 단양, 보은, 옥천, 영동)에서는 50% 안팎의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였습니다. 그만큼 충북에서는 김종필을 자기 지역 정치인으로 보는 인식이 많이 약했던 거라고 볼 수 있겠죠. 의외로 김영삼 후보는 이 지역의 민주 지지층이 표를 몰아주면서 2위를 차지했는데 그만큼 충청권에서는 김대중이라는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꽤나 컸습니다. 아무래도 당시는 5.18에 대한 왜곡된 인식, 김대중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오해가 컸던게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참고로 충청권 총합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태우 : 757,713

김영삼 : 460,378

김대중 : 273,904

김종필 : 793,670

 

비록 충북에서는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당시 충남의 인구가 충북의 2배였기 때문에 김종필 후보가 충남에서의 지지를 기반으로 충청권 전체 1위를 차지했습니다.

 

3. 호남권

 

시도명 후보자별 득표수
후보자별 득표율 (%)
민주정의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김영삼
평화민주당
김대중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광주 4.81 0.51 94.41 0.23
전북 14.13 1.5 83.46 0.75
전남 8.16 1.15 90.28 0.33

 

 

결과 자체는 놀랍지 않은데, 좀 특이한게 2가지 보입니다.

 

1) 광주, 전남은 김대중 후보의 득표율이 90%를 넘긴데 비해 전북은 83%에 그쳤(?)습니다. 그리고 노태우 후보가 전북에서는 무려(?) 14%에 달했죠. 아무래도 전북이 5.18의 직접적인 영향권이 아니기도 했고 전남과는 미묘하게 정서가 달라서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다음 대선때는 전북도 전남과 그렇게 큰 차이는 나지 않았습니다.

 

2) 김영삼 후보의 득표율이 노태우 후보와 비교해서 훨씬 저조합니다. 이게 노태우가 속한 민정당이 5.18의 가해자였음을 생각하면 좀 놀랍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그만큼 당시 단일화 실패에 대해서 호남 사람들이 김영삼에 대해 느낀 반감이 컸다는 뜻입니다(부산, 경남에서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났죠)

 

여기서부터는 득표율 차가 좀 크기 때문에 부산.경남 제외하고는 총 득표수 계산은 생략합니다.

 

 

4. 대경권

 

시도명 후보자별 득표수
후보자별 득표율 (%)
민주정의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김영삼
평화민주당
김대중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대구 70.69 24.28 2.63 2.05
경북 66.38 28.17 2.38 2.58

 

노태우 후보가 가장 크게 이긴 곳입니다. 특히 대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노태우 후보가 70%를 넘겼죠. 아무래도 노태우 고향이 대구인데다 경북고 출신인게 꽤나 크게 작용했습니다. 반대로 여기서는 민주 진영 표가 거의 다 김영삼 후보에게 갔습니다. 지역 감정, 특히 호남에 대한 반감이 극심했던 시절이라 김대중 후보는 5%로 건지지 못했습니다.

 

 

5. 동남권

 

시도명 후보자별 득표수
후보자별 득표율 (%)
민주정의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김영삼
평화민주당
김대중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부산 32.1 55.98 9.14 2.58
경남 41.17 51.26 4.5 2.66
         

 

김영삼 후보의 본거지가 이쪽이라서 1위를 한건 예상이 가능했는데, 문제는 득표율 자체가 김영삼 후보의 기대치를 크게 밑돌았습니다. 부산만 하더라도 56%에 그쳤고 특히 경남에서는 노태우 후보와의 격차가 불과 10%에 그쳤습니다. 노태우, 김대중 후보가 각각의 텃밭에서 60%를 훌쩍 넘긴걸 감안하면 김영삼 입장에서는 크게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결과였죠. 

그 원인을 따져보면

 

1) 부산의 경우는 호남 출향민들이 은근 있다보니 김대중 후보가 9%를 득표하면서 김영삼의 표를 상대적으로 잠식하기도 했습니다.

2) 부산/경남이 상대적으로 경제개발의 수혜지역이다 보니 보수층 자체가 생각보다 두터웠습니다.

3) 경남에서 울산, 서부경남은 김영삼이 아닌 노태우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인구가 가장 많은 울산에서 비록 근소한 차이지만 1위를 빼앗긴 것은 김영삼에게 꽤나 뼈아팠을 겁니다. 서북부 경남은 말이 경남이지 사실상 경북에 가깝기 때문에 민정당 지지세가 더 강하게 나타난 것도 있고요.

 

여기의 총 득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노태우 : 1,433,379

김영삼 : 2,420,421

김대중 : 269,213

김종필 : 102,905

 

 

6. 강원&제주

 

시도명 후보자별 득표수
후보자별 득표율 (%)
민주정의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김영삼
평화민주당
김대중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강원 59.33 26.11 8.84 5.42
제주 49.77 26.78 18.64 4.51

 

두 곳 모두 노태우 후보의 압승이었습니다. 특히 강원도는 지금보다 더 북한의 도발의 영향을 자주 받은데다 당시 KAL 폭파사건까지 겹치면서 노태우 후보가 대경권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과반을 넘긴 지역이었습니다. 제주도는 그나마 호남 출신들이 적지 않아서 김대중후보가 나름 표를 얻으면서 노태우 후보의 과반 저지에는 성공했죠. 

 

일단 시도별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고, 다음 편에는 서울에서도 난공불락의 요새같은 강남3구+용산의 흐름, 그리고 경기도와 경상남도의 세부 결과를 한번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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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기론 충남에선 노태우가 천원군 말고도 금산군에서도 이긴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23.01.12. 17:39
LaMer 글쓴이
확인해 보니 그렇네요 감사합니다^^;; 그러고보니 금산은 역대 대선을 다 맞춘걸로 유명하죠
23.01.12.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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