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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혼란이 그리운 추억이 될 그 날까지

문통최고 문통최고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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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호르몬 주사 맞으러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갔는데 원장님이 '이제 호르몬 맞으신지 3개월이 넘으셨는데 좀 어떠세요?'라고 물어보시길래 저도 모르게 '감정기복이 너무 심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원장님께서 말씀하시길 호르몬 주사 주기에 따라서 감정 기복이 생길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전 그게 아니라 매일 감정이 왔다갔다 한다고 말씀드렸고요. 기뻤다가 슬펐다가 우울했다가 외로웠다가 등 감정이 왔다갔다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원장님께선 그걸 들으시고는 정 힘들면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씀해주셨고요. 다만, 병원에서도 보통 우울증은 몇 개월씩 지켜본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힘들면 호르몬 맞는 방법을 주사에서 약으로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씀해주셨고요. 그러면서 마지막에 '호르몬 때문에 그래요. 호르몬 때문에...'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이게 은근히 위로가 되네요. 

 

원장님께서 보통 초반에 감정 기복이 생기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 좋아진다고 하니까 조금만 더 버텨보려고요. 2주 뒤에 다시 병원에 갔을 때, 그 때도 너무 우울하고 힘들면 원장님께 다시 제대로 말씀드리려고요.

 

오늘은 어머니랑 오랜만에 밖에 나가서 애슐리도 갔다오고 장도 봤습니다. 밖에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좀걸으면 좋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지하철에서 커플 분들이 다정하게 손잡거나 팔짱끼고 애인한테 기대는 모습을 보니 더 우울해지더라고요.

 

애슐리에 가서 맛난 걸 먹을 때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먹었고요. 최대한 망상 안하고 지내보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가 한없이 우울하고 외로운 하루였습니다. 이어폰으로 온갖 이별 노래, 짝사랑 노래나 들었고요.

 

어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저랑 비슷한 사연을 가지신 분이 있더라고요. '난 남자고 동성친구를 좋아했다. 근데 더 좋아했다간 친구한테 오히려 민폐가 될 것 같아서 이만 마음을 접는다'라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정말내용이 어쩜 저랑 비슷한지 놀랄 정도였어요.

 

거기에 달린 댓글이 하나 있는데, 인상적이어서 소개해드릴려고요. '나중에 짝사랑이라도 그런 연이 있었다는 거에 감사하는 날이 올 거에요' 솔직히 이런 날이 언제 올진 모르겠습니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그리운추억이 되는 날이 언제 올지 지금으로선 가늠이 안되네요.

 

내일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공부가 잘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친구가 보고싶고, 고등학교 시절만 생각나고 그러거든요. 근데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현실의 삶을 살면서 잊어보려고요. 

 

지금의 감정과 혼란, 동성친구를 좋아하는 감정이 언제쯤 다 사라질지 알 수는 없지만 과거를 생각하면서 후회하는 짓만 하고 싶지는 않아요. 당장 제 동성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꿈을 위해 대학교도 새로 들어가서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요. 저도 이제부터라도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죠.

 

나중에, 언젠가 지금의 감정과 혼란이 다 사라지고 지금의 상태가 그리운 추억이 됐을 때, 그 때 친구를 다시만나려고요. 지금 상태에서 만났다간 감정이 폭발할게 분명하니. 

 

혹시 나중에, 만약 저에게 다시 기회가 생겨서 좋은 사람이 다가온다면, 그 때는 그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네요. 그 사람이 설령 동성이어도. 똑같은 실수를 두 번하고 싶지는 않으니. 

 

그러기 위해서 언젠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 그 날을 위해 내일부터 무지 힘들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다시 공부해볼게요.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나중에 친구를 다시 만나기 위해. 

 

 

혹시 이 엄청나게 긴 글을 다 읽어주셨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은건데 그게 참 힘드네요. 호르몬을 맞는 대가가 너무 큰 것 같기도 하고요. 쓰다보니 또 울컥하네요, 이만 줄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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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통최고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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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나니까 갑자기 눈물이 나네요. 멘탈이 진짜 엄청 약해졌나 봅니다. 언제쯤 이 혼란이 끝날지..
23.04.1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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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고 있는 혼란 스러움을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 감정변화 때문에 집중도 더 힘들고 하실거에요. 누구나 다 처음은 힘들고 적응하기 어려우니까요. 잘 견뎌 보시고 정말 힘드시면 상담도 찾아보시고요. 힘내세요. 남들보다 조금 더 긴 터널이지만 지나고 나면 더 일상적이고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거에요.
23.04.1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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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통최고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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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sugar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참 힘들긴 하네요. 그래도 아까 좀 우니까 기분이 풀렸습니다. 어제는 그렇게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 나왔는데, 오늘은 글 하나 썼다고 눈물이 계속 나왔네요.

다시 옛날처럼 행복해질 그 날을 위해 내일부터 조금씩 조금씩 힘내볼게요. 과거에 집착한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으니.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조금씩 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해야죠 ㅎㅎ....
23.04.1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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