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가기
  • 아래로
  • 위로
  • 목록
  • 댓글
기존 문서

내가 이렇게 약한 아이였다니

문통최고 문통최고 67

2

2

어릴 때부터 누구보다 뉴스 많이 보고 시사프로 많이 봤는데. 누구보다 어른들의 세계를 일찍 접했으면서 정작 내 마음은 아직도 아이인 상태라니. 

 

고등학교 땐 세상 모든 진로고민과 인생고민을 다 했는데. 정작 그 때 해야 할 친구관계, 연인관계에 대한 고민은 하나도 안 한 채. 근데 그걸 지금 하고 있네. 이제는 진로고민을 다시 해야할 때인데. 

 

언제부터 난 이렇게 약한 아이였던걸까. 몸 속의 주요 호르몬이 남성호르몬에서 여성호르몬으로 바꼈다고 이렇게 큰 심적변화가 온다고? 믿고 싶지 않다. 왜 난 어릴 때 했어야 하는 고민과 생각을 지금 하고 있는걸까. 

 

힘들다는 말 그만해야 되는데 진짜 정말 힘들다. 진짜 정말 힘들고 우울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무기력하다. 어제부턴 여기에 슬픔까지 더해졌네. 이제 또 툭하면 울겠구만. 왜 이렇게 내 멘탈은 아직도 약한 아이 상태인걸까. 도대체 왜.

 

어떻게 해야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격이 성숙해져야 할 중-고등학교 때 독서실만 다니고, 학교에선 공부만 하고, 쉬는 날엔 집에 박혀있던게 원인일까?

 

이제 그만 힘들고 싶은데.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으면 안되는데. 근데 대체 왜 아직도 힘든거냐고. 고등학교 때 광기 섞인채 공부하던 그 패기를 조금이라도 기억해보라고. 그 땐 온갖 짜증나고 화나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적어도 '학교에선' 공부만 했잖아. 지금보다 더 어린 나이일 땐 그렇게 했는데. 근데 지금은 왜... 아무것도 못하냐고.

 

진짜 많은거 안 바라고 평범하게 사는게 소원인데 그게 너무 힘들다. 소소한 행복, 일상의 행복이라는 말 어릴 때부터 정말 싫어했는데, 지금은 저걸 느끼고 싶다. 지금처럼 매일 매일 감정의 폭풍 속에서 살아가는게 아니라. 

 

인간은 나이대별로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해야 될 요소들이 있는데, 난 어릴 때 너무 큰 고민을 한 걸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에 해야 할 풋풋한 고민, 예를 들면 연애를 시작했는데 무슨 선물을 사줘야할까 같은 고민을 안 하고 다른걸 고민했으니. 

 

다른 애들은 연애, 이번주에 놀러갈 곳 이런걸로 고민할 때 나는 '미래에 뭘 먹고 살아야 할까' '사학과로는 취업 때 전혀 도움 안된다는데' '공무원을 해야 하나'같은 걸 고민했으니. 내가 빨리 취업 안하면 아버지 퇴직 후에 먹고 살 거 없다는 불안만 가득했고. 그래서 공무원에 집착한 것 같기도 하다

 

( 물론 이건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술만 마시면 퇴직 후에 뭐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신게 가장 큰 원인이지만. 중학생 아들 앞에서 저런 말을 하시면 뭐 어떡하라고요... '아빠는 OO만 믿어. 알지?'라는 말이 얼마나 큰 부담인데...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

 

또 다른 애들이 애인과의 사소한 견해차이같은 걸 고민할 때 나는 매일 정치 뉴스 보고 사회의 여러 현안과 문제를 고민했었지. 어릴 때부터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진 걸 후회하지는 않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큰 세계를 만난 것 같다. 그 땐 다른 사소한 걸로 고민해도 되는데.

 

생각해보면 난 사춘기가 그렇게 강하게 오지 않았다. 물론 어머니랑 툭하면 싸우긴 했지만, 사춘기 때나 학창 시절에 해야할 고민을 하지 않은채 갑자기 어른이 된 것 같다. 그리곤 그 때 못 한 고민과 후회를 지금 왕창하고 있는거지. 바보처럼.

 

고등학교 때 주변 친구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쟤네들은 참 인생 편하고 좋겠다. 이번주에 어디 놀러갈까, 애인한테 무슨 선물 해줄까만 고민하면 되니까. 난 머리가 터질거 같은데'라고. 그러면서 그 때는 '그래도 내가 쟤네들보다 더 앞서 나가는거야.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게 더 중요하지'라고 말했었다.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틀렸던 것 같다. 오히려 그 때는 저런 일상적이고 풋풋한 고민을 해야 하고, 진로 고민이나 미래 고민은 천천히 해도 될 것 같다. 미래를 고민하더라도 나처럼 세상 심각하고 진지하게 하지 말고. 

 

도대체 그 때는 왜 그렇게 광기 섞인 사람처럼 모든 교우관계를 끊고 학교에서 공부만 했을까. 왜 답이 나오지도 않는 거대한 질문과 주제에 대해 고민했을까. 그 때는 다른 애들처럼 풋풋하게 살아도 되는데. 원래 그럴 나이인데.

 

지나가버린 과거를 후회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질게 없다는걸 잘 안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후회해봤자 내 마음만 아프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안다. 근데... 근데...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 그 때 내가 이랬으면 아직도 동성친구랑 만날텐데' '그 때 세상 진지한 고민을 조금만 덜 했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텐데'같은 의미없는 후회를 계속하게 된다.

 

난 이렇게 계속 과거에 갇혀서 후회나 해야하는걸까?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들 말하지만, 솔직히 이젠 어디서부터 어떻게 나를 고쳐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계속 현실의 시간은 흘러가는데, 내 마음속 시간은 그 시절에 갇힌 채로 지내야하는걸까?

 

사실 할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현실로 다시 나가서 도전하는게 너무 무서우니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사귈 용기도 안 나고, 이젠 어떻게 새로운 사람과 사귀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니까. 그냥 내가 만든 환상의 세계에서 영원히 고등학생인채로 살아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동성친구랑 가상의 연애나 하면서.

 

이러면 안된다는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낭 이렇게 살고 싶다. 그냥... 환상의 세계에선 모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상처받고, 위로받고, 화나고, 기뻐하는 등 모든 감정과 상황을 내가 원하는대로 컨트롤할 수 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도 할 수 있고.

 

이젠 진짜 모르겠다. 그냥 내 멘탈이 원래 이 정도밖에 안 되는거 같다. 현실의 시간은 속절없이 계속 흐르는데, 대체 언제까지 난 과거에 갇혀야하는걸까. 망상은 대체 언제쯤 그만 두는거냐고( 정작 망상이라도 해야 멘탈이 조금 회복된다는게 아이러니. 이거라도 안하면 진짜 한없이 우울하고 외로워진다는게 참... )

 

지금의 혼란이 그리운 추억이 될 날이 올까? 지금 상태로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상태로 살아갈 느낌인데. 내가 지금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지 확신을 못 하겠다. 그냥 지금처럼 망상이나 하면서 사는게 차라리 나은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이젠 

 

 

 

어제 밤엔 진짜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고 불안하질 않나, 친구가 갑자기 죽는 망상을 하질 않나... 덕분에 침대에 일찍 눕긴 했는데 5시간 밖에 못 잤네요. 요즘 잠도 잘 못 자고, 입맛도 없고... 뭐 그렇습니다. 

 

사실 제일 힘든건 어디 얘기할 곳이 없다는 거에요. 부모님한테는 얘기해봤자 어차피 이해 못 하실거고, 나중에 의도치 않게 저에게 상처주는 말만 하실게 뻔하니. 차라리 자취를 했으면 혼자서라도 정신과 갔다오는건데. 

진짜 여기말곤 어디 풀 곳도 없고.

 

다음 호르몬을 맞는 날이 5월 2일이니 그 때까지 잘 버텨야 할텐데... 공부할 의욕은 커녕 집 밖에 나갈 의욕도 안 생기니. 감정 상태가 또 살짝 변한거 같네요. 그냥 마냥 외로워서 망상하던거에서 급격히 우울하고 힘든걸로. 진짜 감정기복이 심해도 너무 심한거 아니냐

 

신고공유스크랩
2
2
호르몬 변화가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는구나 문통최고님 보고 또 깨닫네요. 어머니가 감정변화가 심해지셨는데 그것도 좀 더 잘 이해해드릴 수 있을거 같아요.
23.04.18. 10:42
profile image
문통최고 글쓴이
1
zerosugar
인터넷을 보면 ‘생리할 때 감정기복이 너무 심하다’라는 글이 되게 많죠. 근데 전 호르몬 수치 상으로 늘 생리 중인거니... 감정이 좋아질수가 없죠..

내가 이렇게 나약한 인간이었나...를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23.04.18. 10:46
댓글 등록
취소 댓글 등록

cmt alert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목록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