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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해지는건 불가능한가

문통최고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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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진짜 너무 손해보는 것 같다. 대단한 거 안 바라고 다른 사람들처럼 말 걱정만 안하면 좋겠어. 진짜' '잘나지 않아도 좋으니 나도 평범해지고 싶다' 디씨 말더듬 갤러리에 올라온 댓글입니다. 필연적으로 많은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말을 못하는거라... 얼마나 빡치고 고통스러운지 말로 다 표현이 안되네요.

 

 말을 못하니 반강제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납니다. 친한 친구, 애인, 활발한 대외 활동은 그 중에서도 포기 대상 1순위죠. 부모님은 왜 자꾸 집에만 있냐, 왜 만나는 사람도 없냐고 자꾸 물어보시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말을 못하는데 인간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겠습니까. 가뜩이나 아싸 중에 아싸라서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래서 그럴까요. 인간의 사회적 속성을 무시한채 살아가다 보니 고등학교 때는 정신승리에 빠졌습니다. '친구나 애인같은거 한 명도 없어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 지금 학교에서 연애하고 친구들끼리 놀러갈 궁리만 하는 놈들보다 내가 더 우위에 있는거다. 좋은 대학 가는게 최고지' 이런 식으로요. 실은 다른 애들을 부러워 했으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재수할 때 혼자 저녁먹으러 나갔다가 사람들끼리 즐겁게 다니는걸 보고 한없이 우울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땐 왜 그렇게 끝도 없이 우울했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빡빡 우기던 것과 달리 실제로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던 거였습니다. 근데 말더듬 + 말막힘 때문에 그게 불가능하니 한없이 우울했던 거고요.

 

말더듬과 말막힘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머리 속에선 혼자 별 말을 다하고 있는데 정작 입에선 첫 글자가 안 나와서 버벅거리는 경험이란... 이런 경험을 10년 넘게 하다보면 대인관계를 추구하는게 욕심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에서 원하는 말이 안 나와서 턱턱 걸리는 경험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거든요.

 

사실 이제는 다 포기했습니다. 지금 최대 고민은 '공무원 면접은 잘 통과할 수 있을까' '공무원 되면 전화하고 여기저기 물어볼 일 많다는데 잘 할 수 있을까' 이 정도니까요. 친구? 애인? 활발한 대외 활동? 다 포기했습니다. 말이 안 나와서 스스로에게 빡치는 경험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네요. 그냥 고등학교 때처럼 취업 이후에도 집 - 회사만 왔다갔다 하면서 살아야죠. 

 

다 포기하긴 했는데, 이러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 해결되지 않는 우울, 외로움, 슬픔, 후회, 빡침이 몰려온다는거죠. 이 감정들을 없애기 위해 수많은 상상과 망상을 하지만 궁극적으론 아무 소용 없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망상에 불과하니까요.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망상을 하지만 결국 우울한 감정만 남게 되는거죠.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은건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아무 막힘없이 내뱉고 싶은건데. 그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였나 봅니다. 제가 지금 이런 상황이라 그런가 유튜브나 티비에서 자꾸 연애 얘기할 때마다 빡칩니다. 누군들 연애 안하고 싶냐고. 말을 못하는데 무슨 연애를 해... 말더듬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걸 한번쯤은 고려해줬으면 좋겠네요.

 

뭔가 암담하네요. 지금처럼 해결되지 않는 우울한 감정과 외로움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게.​​​​​ 가뜩이나 호르몬 때문에 감정 기복도 심한데... 근데 뭐 어쩌겠습니까. 제가 이 모양인걸.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하면서 고통받을 바엔 그냥 포기하는게 더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못하는데 무슨 연애를 하고 친구를 사귀겠어요. 회사에서 일하다가 욕만 안 먹으면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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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범하게 사는게 세상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다. 미래가 너무 두려울땐 저도하루하루를 살려고 노력해요ㅠ 안그러면 답이 없더라구요.

23.06.04. 20:30
문통최고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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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sugar
처음 보는 사람과도 아무 부담없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습니다. 난 우리 엄마 아빠랑도 자연스럽게 말을 못하는데...

평범하게 사는건 이제 포기했는데, 이 답답하고 끝나지 않는 우울과 외로움이 문제네요. 참 살아가기 힘듭니다ㅜㅜㅜ
23.06.04. 20:33
profile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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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험난한 길을 걸어 공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쭉 달고 왔던 말더듬때문에 고생하셔왔군요. 겪으셨던 고통을 쉬이 제가 완전히 위로해드릴 수는 없겠지만 저도 의사소통에 장애를 되는 병을 앓고 있는지라 최대한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마음이 닿으면 좋겠습니다.
장애물보다 중요한 것은 목표이므로 수많은 시련은 결국 올바른 길을 향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인내하면 언젠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장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평탄한 삶보다 기복이 있는 삶에서 벗어났다는 쾌감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질 순간이 올 거에요.🙂
23.06.04. 20:37
문통최고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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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K고양이
조금만 말을 많이 하면 늘 말더듬이 심해져서 항상 말을 줄이곤 했죠. 상대방으로부터 듣기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도...

이런 경험이 오래 쌓이다보니 마음 한구석에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항상 남아있습니다. 이걸 해소하려고 혼잣말을 미친듯이 하지만 혼잣말 할 때도 더듬는 자신을 볼 때면...

따뜻한 위로 정말 감사합니다 ㅎㅎ.... ‘기복이 있는 삶에서 벗어난 쾌감’... 꼭 느껴봤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23.06.0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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