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혼자 지내야겠다
외롭고 쓸쓸한 감정이 없는건 아니다.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고 취미도 없고 밖에 나가지도 않는 상황인데 감정이 멀쩡할리가 없지. 근데, 지금의 상태에 너무 적응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완전 어릴 때부터 난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노는걸 싫어했다. 밖에 있으면 늘 집에 들어가고 싶어했고, 학교 밖에서 반 친구들과 연락해본 경험도 거의 없었다.
뭔가 씁쓸하고 찜찜한 기분이 계속 되었지만 그렇다고 이 감정을 없애기 위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하는게 너무 싫었다. 계속 혼자 지내다 보니 이 상태에 적응해버린 것 같다.
사실 사람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아예 몰랐다. 말더듬 때문에 조금만 말을 많이 하면 말이 턱턱 막히고 더듬는 경험을 너무 오래 했다. 어릴 때부터 생긴 이런저런 이유로 지나치게 소극적인 성격이 되었다( 아마도 제일 큰 이유는 말더듬 + 부모님이 가끔 던지시는 아픈 말일 것이다 )
'얌전하고 성실한 모범생' 소리 듣는게 좋았다. 학교에서 맨날 친구들끼리 떠들고 연애하는 놈들과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야만 집안이 유지되니까, 고등학생이 할 법한 고민은 안하고 지나치게 머리아픈 고민( 집안문제, 친가문제, 진로문제 등등 )만 했었다.
애초에 남이 먼저 연락하지 않은 이상 내가 먼저 연락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마저도 성인이 된 이후엔 먼저 오는 연락도 끊었다. 만나서 나 혼자 알게 모르게 받는 스트레스( 나 혼자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있는게 너무 싫었다 )가 싫었으니까.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설상가상 20살 때부터 재수 - 코로나 - 코로나 - 코로나 + 집콕( 진행중 )을 하고 있다보니 아싸 성향이 너무 심해졌다. 물론 누군가는 이걸 듣고 '다 핑계에 불과하다'라고 대답하겠지만. 난 이제 더 이상 사회에서 요구하는 '평범한 사람'이 못 될 것 같다.
여기까지만 해도 정신상태가 충분히 이상한데 올해부턴 호르몬 치료 + 동성연애 선호까지 합쳐졌으니... 뭘 못할 것 같다. 아니, 뭘 못하는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나조차도 내가 싫은데, 사람을 만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안하는데, 누가 나를 이해해주겠냐.
그냥 혼자 살아야겠다. 지금 내가 하는 가장 큰 걱정은 '과연 내가 취업한 이후에 부모님말고는 연락하는 사람도 없고, 취미도 없고, 쉬는 날에는 집에만 혼자 있고, 호르몬 치료를 받는 채로 오래 지낼 수 있을까?'이다.
그래서 그런걸까, 요즘따라 유달리 고독사 다큐를 자주 찾아보게 된다. 몇 년 전까진 왜 저러는지 전혀 이해 못 했는데, 요즘은 이해가 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어차피 평생 지금처럼 살아야 할 운명인데, 난 과연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혼자서라도 강인하게 살아가야 되는데. 사실 뭐 혼자 살면 아무리 공무원 월급이 박봉이어도 사는데 크게 부족하진 않으니까. 어차피 식비말고는 돈 쓸 곳도 없으니.
다른건 다 포기했다. 연애, 친구, 취미 등등... 그냥 적당한데 취업해서 월급이나 받으면서 혼자 살고 싶다. 혼자 망상이나 하면서. 그게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cmt al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