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랑 손 잡고 걷고 싶다
모르겠다. 분명 통계상으론 연애하는 비율이 점점 줄어드는데, 왜 밖에만 나가면 손 잡고 걸어다니는 커플들만 보이는걸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내가 지금 상태가 이상해서 커플이 많아 보이는걸까?
이 망할 놈의 우울증은 왜 틈만 나면 심해지는건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어거지로 버텨왔던 감정들이 호르몬 치료 이후 한 번에 와르르 몰려오는 기분이다. 대체 난 언제까지 혼자 우울해하면서 연애하는 망상이나 해야 할까.
근데 손에 다한증이 있어서 손을 잡을수는 있을까? 생각해보면 내 손에 땀이 너무 많긴하네. 하여튼 도움 안 되는 몸이야. 우울하고 또 우울한 기분이 가끔씩 계속 이어진다. 끝도 없는 우울이란 이런 느낌이 아닐까?
누굴 만나고 싶어도 이젠 용기도 안 생기고,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만나더라도 도저히 여자랑 손 잡는 상상은 안되고...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이다.
지금 상황에서 같이 밖에 나가주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늘 그랬다. 난 이상할 정도로 친구를 안 사귀고 엄마랑만 계속 밖에 다녔다. 지금도 같이 밖에서 밥 먹거나 영화 보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걸까. 이제는 '그냥 엄마랑 손 잡고 다닐까?'라는 생각까지 든다. 근데 지금까지 밖에 잘 나가지도 않던 아들이 갑자기 엄마랑 손 잡고 어디 놀러가자고 하면 엄마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밖에서 엄마랑 손잡고 다니면 왠지 사람들이 쳐다볼 거 같기도 하고...
드디어 미쳤나보다. 이젠 별 생각이 다 드네. 역시 말 못하는 아싸로 사는건 참 힘들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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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인데, 고등학교 자퇴 후(상당히)오랜 기간 히키코모리 생활을 했습니다. 게임 중독자로 오랜 기간 살았지만, 공익 복무를 시작해서 많은 분들의 도움 덕에 무사히 마쳤습니다. 또 조금 늦게 대학에 진학하여 공부와 함께 사회생활을 천천히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보고 작성자분이 느끼셨을 평상시의 수치심, 자괴감 같은 것들이 절실하게 와닿습니다.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정상적인 대다수의 사람들은 상대에게 깐깐하지 않다는 걸 의식적으로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외려 생각보다 너그러운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외적으로 이지메와 같은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도록 주관을 뚜렷하게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적어도 70세 이상 살 수 있다면 지금의 수치심도 나중에는 한때의 기억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평가될 것이므로, 당장의 정신적 고통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아야 합니다. 쉽지는 않습니다만... 억지로라도 생각을 멈춰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작성자분께서 인간관계를 겪으시면서 느끼셨을 감정은 "수치심"일 것이라고 추측을 해 봅니다. 제가 그랬기 때문에... 저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에는 <수치심(조지프 버고, 현암사)>이라는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기회가 되실 때 한 번 읽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꽉 막힌 인생에 아주 대단한 해법이 있다고 말해주는 자극적인 책은 아닙니다. 다만.. 수치심이라고 하는 것이 저주받은 소수의 인간에게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인간군상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어 괴로움을 주는 보편적인 감정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번 읽으면서 스스로를 조금 덜 몰아세울 수 있었다...라는 감상의 책입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나는 왜 이럴까 하고 자책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구요. 말 좀 못하면 어때요? 제 생각에는 우리 아싸들이 말을 못 하는 핵심 이유는 그냥 관심이 없는 주제로 얘기하기 싫어서인 것입니다. 저는 가수니 배우니 관심이 없고, 리그오브레전드 피파 안 하고, 유명하다는 스트리머 관심없고 또 딱히 남이 뭔 썰을 풀든 말든 재미가 없습니다. 이런 거 억지로 재미 붙이려고 하면 골병 들어서 못 산다구요!!! 이런 부류의 사람은 조용히 살아갈 뿐, 세상에 나 단 1명만이 그런 것은 아닌 겁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우울하고 화나고 힘 빠지는 것도 절대 혼자 그런 게 아닙니다. 작성자님은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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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댓글 잘 읽었습니다. 수치심이라... 솔직히 찔리네요. 관심 없는 주제로 얘기하기도 싫을 뿐만 아니라 말더듬 때문에 스스로 상처받는게 싫어서 계속 혼자 지내다보니 아싸 중의 아싸가 된 것 같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저에 대해 큰 신경을 안 쓴다는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더듬 때문에 스스로 고통받는게 너무 짜증나네요.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만나기 싫은 상태‘가 된 것 같아요. 생각을 억지로라도 멈춰야 하지만 자주 끝도 없는 고민과 우울에 빠지게 됩니다.
밖에만 나가면 사람들이 다들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커플들은 왜 이리 많이 보이는 것이며, 다들 뭐 이렇게 대화를 잘 하는건지... 난 가끔 카페에서 주문하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ㅜㅜ
그래서 더더욱 집 밖에 못 나가나 봅니다. 생각이 줄어들기는 커녕 더 늘어나니까요.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가고는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하는 건 없지만요. 앞으로도 그냥 이렇게 학교 다니면서, 취업 준비하면서, 회사 다니면서 조용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굳이 힘들게 남들처럼 되려고 애쓰는 것보단 이런 나 자신의 성향을 인정하면서 나름 행복하게 사는게 더 좋을 것 같거든요. 물론 말씀처럼 ‘시도 때도 없이 우울하고 화나고 힘 빠지는’ 인생이 되겠지만, 저만 그런 것도 아니니까요
긴 조언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ㅎㅎ 위로가 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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