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 오랜만에 와서부터 질문이지만
제가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다가 글이 이해가 안되서
혼란에 빠진 챕터가
"종교랑 연관된 능력주의"에서 칼뱅이랑 루터 그리고 가톨릭 시작에서부터의 능력주의
이게 이해가 안되는데 설명 가능한가요?

'Chapter2 "선량하니까 위대하다" 능력주의 도덕의 짧은 역사'에 있는 <구원과 자기 구제> 파트에 대해서 물어보시는 것 같은데 질문이 너무 포괄적이라서 그냥 이 파트를 요약해보자면
오늘날 개신교라 불리는 세력들이 16c 종교 개혁을 단행했던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면죄부 판매를 비롯한 교회의 일탈과 부패한 관행에 대한 반발이지만 거시적으로 봤을 때 능력에 따른 구원론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출발했다고 책은 말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오직 신의 은총일 뿐 개인의 노력이나 성례(聖禮)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쉽게 말해서 내가 매주 일요일마다 빠짐없이 성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 이상으로 신에게 무언가를 하는 것이 나중에 천국갈 때 그것을 안한 사람보다 먼저 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게 아니라는겁니다) 마치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의 19번째 문장과 비슷한 맥락이라 볼 수 있죠 "연옥에 있는 영들은, 우리가 그것을 다 확신한다 하더라도, 자기네들이 누릴 복락을 확신 하는지 증명할 수 없다."
루터와 함께 종교 개혁을 주도했던 칼벵 또한 구원이란 신이 내린 은총의 산물일 뿐이며 인간의 실적이나 자격에 구애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구원이란 이미 정해진 것이며 누가 구원받고 누가 단죄받을지는 예정되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칼벵이 말한 구원예정설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칼벵의 구원예정설에 의문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럼 현생에서 누가 구원받고 누가 단죄받을지 어떻게 알아요?" 사실 이러한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한게 시대상황을 생각해보면 16c 중반 이전까진 흑사병이나 백년전쟁 등이 발생했고 이후 이탈리아 대전쟁이나 슈말칼덴 전쟁 등 유럽 내부의 혼란은 끊이지 않았고 외부적으로는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면서 이슬람 세력이 팽창하고 있었죠 그렇게되니 자연스럽게 일반 대중들은 구원과 은총에 대한 종교적 열의가 높을 수 밖에 없었는데 천국 갈 사람들이 이미 결정되어있다고 하니 당연히 반발심과 의문이 들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이러한 의문과 불안 심리를 해결하고자 칼벵주의자들은 직업윤리를 만들어 냈다고 책에서 얘기합니다 즉, 모든 사람이 신에게서 직업을 소명받았기에 그 직업에 매진하는 일은 구원의 징표가 된다는 것이죠(제가 종교역사에 관해서 잘은 몰라 이게 칼벵이 주장한건지 칼벵'주의자'들이 주장한건지 잘 모르겠네요 일단 책에는 칼벵'주의자'들이 얘기했다고 적혀있네요) 그들은 일이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닌 신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한 행위'라 정의하며 돈을 마음껏 쓰기위해 일하는 것은 이러한 목적에 대한 일탈이자 부패로 여겼습니다
센델은 이 부분에 대해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평생 묵묵히 힘들게 일한 삶, 그것은 분명 구원의 티켓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장본인이 (이미) 구원받았음을 나타내는 표시는 될 수 있다.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증명한다." 일을 열심히 모든 한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일을 열심히 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방증을 한 셈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겁니다 그러니까 신이 인간의 노력을 외면하는 것이라 생각하는게 어렵다는겁니다 쉽게 말해 "내가 이 정도로 열심히 일했으니까 죽은 뒤에 천국을 간다면 현생에서 열심히 일했던 노오오오력이 반영된 결과겠지?"라고 추측하는게 인간의 심리상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에 더해 베버 또한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샌델의 주장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따라서 칼벵주의자는 때때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한 자라고 표현하고, 더 정확하게는 자기 구원의 확신자라고 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은 "칼벵의 예정설과 구원은 소명으로서의 직업을 통해 반드시 현시된다는 생각과 결합됨으로써, '세속적 성공은 구원받은 사람의 훌륭한 증표'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라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현실에서 직업으로 하여금 많은 돈을 벌어 갖고있는 것은 곧 사후(死後) 하느님에게 구원받는 증표로 치환된다는 겁니다 예컨데 돈이 많은 이건희 같은 사람들은 나중에 죽고 천국에 가지만 서울역 노숙자들은 그렇지 못한다는거죠
이렇게되니 돈을 많이 번 사람들 입장에서는 "열심히 돈을 많이 벌었으니 나는 천국에 갈 사람임이 예정된 것이 분명하고 거지들은 열심히 돈을 벌지 않았으니 천국에 못갈 것이 확실하군"이란 생각으로 이어진다고 책은 얘기합니다 즉, 과거 예배를 통한 신의 은총을 얻는 '세상 밖 영적 귀족주의'를 대신하여 자산의 규모로 신의 은총을 대신하는 '세상 속 영적 귀족주의'가 수립되었다고 책은 설명합니다 결국 샌델은 책을 통해 "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가 단순히 자본주의 정신을 생기게 할 뿐만이 아니라 자기 구제와 자기 운명에 대한 책임의 윤리, 즉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에 적합한 윤리를 장려한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샌델은 과거 종교적 영역에서 벌어진 "신에게 선택된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얻은 것인가? 아니면 인간 통제 범위 밖에 있는 은총의 선물로서 구원을 얻은 것인가?"라는 논쟁이 오늘날 능력에 관한 논쟁들의 쟁점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는 주장을 하는겁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한 것인가? 아니면 통제 범위 밖의 요인들이 작용해 성공한 것인가?" 다시 말해 오늘날 능력주의 담론에서 얘기하는 '성공한 사람은 그럴 만해서 성공했다'와 과거 종교적 관점에서 얘기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축적한 돈은 예정된 구원의 징표이다'라는 신념이 공통적으로 중요한 교집합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더 심각한 점은 오늘날 세속적 능력주의는 이전의 섭리론 신앙처럼 성공이란 징표에 도덕적 틀을 씌움으로써 그 의미를 정당화하려고 시도합니다 실제로는 전혀 정당하지 않음에도 말이죠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부와 권력을 통해 성공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성공이란 것은 그들에게 탁월함과 도덕적 징표를 부여합니다 마치 대치동에서 유명 학원을 다니며 부모의 충분한 지원을 받아 명문대에 진학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그 사람의 뛰어난 능력과 노오오오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얘기하면서 그 성공에 도덕적 탁월성을 부여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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