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방송에서 하는 수능만점자 인터뷰를 보며
언제부턴가 방송에서 매년 하는 수능만점자 인터뷰가 불편해지더라고요. 뿐만 아니라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소위 '개천에서 용난' 사람들 인터뷰 하는 것도 볼 때마다 기분이 나빴습니다.
마치 대입을 성공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니가 실패한 건 오로지 니가 노력을 안해서야. 이 사람들을 봐.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했잖아'라고 외치는 것 같아서요
수능을 만점 받고, 좋은 대학에 들어간건 분명히 축하할 일입니다. 물론 흔히들 하는 말로 이 사람들이 '국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할지'는 미지수지만요. 문과의 경우 대부분은 고시를 보거나 로스쿨을 가던데... 아무튼, 대학 잘간 사람들을 축하해 주는건 좋은 일이죠.
하지만, 모두가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더군다가 좋은 대학을 간 사람들이 오로지 본인의 노력덕분에 그 대학을 간 것도 아니고요. 잘 찾아보시면 요즘 수능만점자들은 대부분 재수, N수생이거나 현역일경우 강남의 좋은 고등학교 출신입니다.
sky 입학자요? 매년 sky 신입생 중에 특목고 출신, 강남 8학군 출신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건 다들 잘 아실 겁니다. 물론 여전히 어려운 환경에서 ebs만 가지고 공부해 좋은 대학을 가는 학생들이 있죠.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들었던 '개천에서 용 나는' 사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죠.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건 학생의 엄청난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부모의 끊임없는 교육비 지출 + 좋은 고등학교 + 정확한 입시정보 + 운이 따라줘야 가능한 일이죠. 일반적인 가정에서 sky를 보낸다는건 그만큼 정말 어렵습니다. 대부분은 대입을 실패한 채 20대를 맞이하죠.
전 그래서 수능만점자 인터뷰가 싫습니다. 그나마 이 사람들은 수능 만점을 받았다는 특징이라도 있죠. 몇 달 전 연예인 아들이 서울대 갔다고 오만 방송 나오는걸 보고 속이 답답하더라고요.
어릴 때 잠깐 방송 나온게 전부인 사람인데, 좋은 대학 갔다고 방송에 나가고 메가 국어강사랑 영상 찍는게 과연 정상일까요? 노력한 대가를 받는거라고요? 과연 이 사람이 연예인 아들이 아니라 지방의 중산층 가정에 태어났어도 서울대에 갈 수 있었을까요?
전 지금의 입시 문화가 소위 입시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전혀 위로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상위 몇 %에 불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 평균인 것처럼 과장해서 얘기하죠. 인서울만 놓고 봐도, 인터넷에서 맨날 욕먹는 국숭세단 대학들이 상위 10%입니다( 정확히는 국민대가 상위 10%에 딱 걸쳐있죠 )
인터넷에서야 '국숭세단 갈빠엔 반수함' 이딴 글이 넘쳐나지만, 사실은 여기만 가도 대단한 겁니다. 그 윗 라인은 더 대단한 거고요. 근데 수능 강사들이나, 인터넷 커뮤에선 이 사실을 왜곡하죠. 마치 누구나 인서울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처럼, 지방에 있는 대학 가는 사람들은 모두 노력 안한 사람 취급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한 사탐 강사는 강의 중에 '여러분~ 나중에 대학에서 바다가 보이는 학교 가시면 안돼요~ 2호선 타고 다니셔야죠'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수학 강사는 최소한 사회에서 불편하지는 않은 대학 라인으로 '인서울'을 얘기했죠.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인서울, 더 확대해서 지방 거점 국립대랑 몇몇 괜찮은 사립대까지 싹 다 포함해도 상위 30%입니다. 강사들이 말하는 인서울 대학 갈려면 상위 10% 안에는 들어야 하고요. 이게 평균인가요? 인서울 정도는 가야 사회를 살아갈 때 괜찮다고요? 그럼 인서울 못간 사람들은요?
앞에선 저딴 말을 하고 뒤에선 '누구나 전문성을 키우면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 다 끝나는건가요? 뭐죠? 도대체? 조언을 할거면 제발 앞뒤가 맞게 하라고요.
그리고 솔직히 이젠 다 알잖아요. 부모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없이, 지방 공립 일반고에서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sky 가는게 얼마나 희귀한 케이스가 되고 있는지. sky에 입학만 하면 인생이 활짝 핀다는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 제발 학생들에게 가스라이팅 좀 적당히 합시다.
또, 말로만 '수능 본 학생들 정말 수고했어요. 수능 점수는 인생과 큰 상관 없어요'라고 외치지 좀 말고 제대로 좀 위로해줘요. 특히 수능 강사들... 니네가 인서울 정도는 가야 한다고 강의 중에 말했으면서, 수능 끝나고는 '수능 못봐도 괜찮아요~'를 외치면 학생들이 믿겠습니까? 학벌 컴플렉스만 생기지.
방송이나 언론에서도 수능 만점자 인터뷰같은거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네요. 원하는 대학 못 간 절대 다수의 20대들이 그거 보면서 뭘 얻으라는건지. 설마 '너도 열심히 노력하면 이 사람처럼 성공할 수 있다!' 따위의 산업화 시대에나 먹힐 얘기 할려는 건가요? 그럴 생각이면 관둡시다.
+) 상위 10% 이상의 이야기가 과대대표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나 인서울 하는거 아니고, 아무나 sky 가는거 아닌데, 대학 잘 간 사람들만 자꾸 대학에 대해 얘기를 하니 평균이 왜곡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알게 모르게 지방대, 전문대 비하도 생기는 것 같고요.
제가 예시를 대학으로 들었지만, 이 얘기는 다른 분야에도 적용됩니다. 특히 노동 분야. 아직도 여름에 에어컨 안 틀어주는 회사, 월급 밀리고 4대보험 적용 안되는 회사, 상사가 여직원에게 온갖 성희롱 성추행하는 회사, 근로시간 말도 안되게 긴 회사가 넘쳐나는데 애써 무시하는 경향이 종종 보입니다.
왜 문통이 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을 온갖 욕 먹어가며 했는지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요. 특히 보수일수록. 왜 사람들이 남들이 말하는 좋은 기업에 못 다니고 저런 중소기업에 다녀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꽤 보입니다. '노력 안해서 중소기업 다니는거 아님? 싫으면 때려치고 이직해야지'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왜 그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지방대 간 사람은 왜 지방대에 갔는지, 중소기업 다니는 사람은 왜 그 회사에 다니는지 생각 좀 하고 말합시다. 자기가 타인의 인생에 대해 모든 걸 안다는 태도는 굉장히 역겹거든요.
주절주절 길게 썼는데, 말이 되게 썼는진 모르겠네요. 짧게 요약하자면, 우리 사회가 상위 10%, 5% 이상의 이야기를 과대 대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작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다수의 시민들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만 비추면서 '이 사람들이 국민 평균이에요^___^'라고 얘기하는 기분이랄까? 그게 대학이든 노동이든.
상류층의 이야기 그만 들려주고 평범한 절대 다수의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겠네요. 대입에서도 수능 만점자 인터뷰같은 건 이제 그만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