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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선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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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이 시리즈 글을 정치게시판에 썼는데 아무래도 기사들이 많다보니 찾아보시기 힘들거 같다고 판단해서 다시 칼럼 게시판에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건 6공화국 3번째 대선, 그리고 민주당의 첫 대선 승리인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입니다.

 

 

1. 개관

시도명 선거인수 투표수 후보자별 득표수   구시군명 후보자별 득표율 (%)
한나라당
이회창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국민신당
이인제
  한나라당
이회창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국민신당
이인제
합계 32,290,416 26,042,633 9,935,718 10,326,275 4,925,591 25,642,438   합계 38.74 40.27 19.2
서울 7,358,547 5,926,743 2,394,309 2,627,308 747,856 5,854,773   서울 40.89 44.87 12.77
부산 2,692,311 2,124,010 1,117,069 320,178 623,756 2,094,406   부산 53.33 15.28 29.78
대구 1,707,338 1,347,018 965,607 166,576 173,649 1,329,088   대구 72.65 12.53 13.06
인천 1,639,655 1,311,512 470,560 497,839 297,739 1,292,611   인천 36.4 38.51 23.03
광주 870,554 783,025 13,294 754,159 5,181 775,199   광주 1.71 97.28 0.66
대전 881,474 692,821 199,266 307,493 164,374 682,893   대전 29.17 45.02 24.07
울산 654,125 530,459 268,998 80,751 139,824 523,763   울산 51.35 15.41 26.69
경기 5,707,087 4,600,005 1,612,108 1,781,577 1,071,704 4,535,524   경기 35.54 39.28 23.62
강원 1,077,853 846,596 358,921 197,438 257,140 830,943   강원 43.19 23.76 30.94
충북 1,015,921 805,496 243,210 295,666 232,254 789,816   충북 30.79 37.43 29.4
충남 1,330,627 1,023,990 235,457 483,093 261,802 1,001,198   충남 23.51 48.25 26.14
전북 1,391,537 1,190,190 53,114 1,078,957 25,037 1,169,189   전북 4.54 92.28 2.14
전남 1,519,292 1,325,731 41,534 1,231,726 18,305 1,301,836   전남 3.19 94.61 1.4
경북 1,988,379 1,574,454 953,360 210,403 335,087 1,539,608   경북 61.92 13.66 21.76
경남 2,094,036 1,681,584 908,808 182,102 515,869 1,648,014   경남 55.14 11.04 31.3
제주 361,680 278,999 100,103 111,009 56,014 273,577   제주 36.59 40.57 20.47

 

  • 1997년 대통령 선거는 여러모로 민주 진영에게는 의의가 큰 선거였습니다. 선거를 통해 50년만에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다는 점, 마침내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3전 4기의 도전끝에 대권을 쟁취했다는 점에서 민주당 최초의 집권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이죠. 여기에는 김대중+김종필+박태준의 연합을 통한 연립정부 구상으로 중도 보수층을 어느정도 흡수한 것과 김대중 본인의 이미지메이킹, 그리고 여당의 분열에 따른 이익까지 겹치면서 그야말로 천운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선거였습니다.
  • 물론 한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우선 IMF 위기와 문민정부 막판의 레임덕, 그리고 여당의 분열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보수정당인 자민련과의 연합을 통해서야 겨우 1.6%차이로 신승을 했다는 건 그만큼 당시 민주진영의 힘이 보수진영에 비해서는 크게 부족했음을 보여주는 증표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김대중이라는 인물에 대한 불호가 반대진영에서 상당히 컸던 점도 무시할 수 없고요. 덧붙여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생긴 민주진영 내부의 분열과 반목이 대선에서도 이어지면서 새정치국민회의와 통합민주당은 통합을 이뤄내지 못하면서 결국 통합민주당은 신한국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이라는 향후 보수정당의 대표주자가 탄생하게 되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에서 국민회의 쪽으로 합류한 통합민주당 인사들도 일부 있었는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5년 후 대통령에 당선되는 그 분 입니다.
  • 그래도 15대 대선의 승리를 저평가할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때 비로소 여당이 되면서 집권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인재들이 들어오면서 드디어 민주당에서도 수권능력이라는게 생기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또한 이때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경력을 쌓은 게 훗날 대통령이 되는 밑거름으로 작용했죠.
  • 지역별로 보면 동서간의 대결구도가 매우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우선 김대중 후보는 기존에 우세했던 서울과 호남 외에도 DJP 연합을 통해 경인권과 충청권을 석권하면서 40%를 넘는 득표율을 올린 반면, 이회창 후보는 영남, 강원에서 우세를 보였고 수도권에서도 김대중 후보와 접전을 벌이며 표차를 크게 줄였습니다. 문제는 제3의 후보인 이인제 후보가 기존에 보수가 우세했던 경기도와 강원, 충청, PK의 표를 상당부분 잠식하는 바람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부분은 후에 지역별 결과에서 좀 더 세부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2. 권역별 결과

 1) 수도권

      

구시군명 후보자별 득표율 (%)
한나라당
이회창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국민신당
이인제
합계 38.32% 42.00% 18.12%
서울 40.89 44.87 12.77
인천 36.4 38.51 23.03
경기 35.54 39.28 23.62

 

  • 김대중 후보는 이전 2번의 대선에서 서울에서는 이겼지만 인천과 경기도에서 그 이상으로 패하면서 수도권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김대중 후보는 수도권 전체에서 42.0%의 득표율을 올리며 3.8% 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누르면서 서울(44.87%), 인천(38.51%), 경기(39.28%)를 모두 승리했습니다. 표차로 따져도 약 43만표 차이였는데, 이는 전체 표차보다(약 39만표)도 더 많은 차이였습니다. 그만큼 수도권 승리가 김대중 후보에게는 값진 승리였습니다. 참고로 이때부터 지금까지도 민주당 후보들은 수도권 3개 광역단체를 모두 이겨야 대선에서 승리하는 징크스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 서울 : 그간 김대중 후보가 서울을 2번 이기긴 했지만 모두 1~2%대의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것이어서 전체 판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던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40.89% : 44.87%로 약 4% 차이를 보이면서 가장 큰 승리를 거뒀습니다. 김대중 후보는 용산, 서초, 강남, 송파 4개구를 제외한 21개 구에서 모두 승리했으며 용산, 송파에서도 근소하게 패하면서 이회창 후보의 추격을 어느정도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인천/경기와는 다르게 이인제 후보의 득표율은 12% 대에 머물렀는데요, 이는 서울 보수층이 확실하게 이회창으로 결집하기도 했거니와 충청 출신에 경기도지사를 지낸 이인제 후보가 서울에는 별다른 접점이 없었던 게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 인천 : 수도권에서 가장 접전이 벌어진 곳이 인천이었습니다. 당시 이회창, 김대중 후보는 36.40% : 38.51%를 기록하면서 2.1%차이로 김대중 후보가 신승했습니다. 지역적으로도 서부와 동부간의 표심차이가 매우 뚜렷했는데 이회창 후보는 서구를 제외한 인천 서부(강화, 옹진, 중, 동, 남, 연수)에서 우세를 보인 반면, 김대중 후보는 택지 비중이 높은 서구와 동부권(계양, 부평, 남동)을 가져가면서 간발의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인제 후보는 충청권 출신 유권자들의 지지에 힙입어 약 23%의 득표율을 올렸는데요, 의외로 강화와 옹진에서 모두 30%를 넘기면서 이회창 후보의 발목을 제대로 잡았습니다.
  • 경기 : 1997년 대통령 선거는 1기 신도시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치러진 첫 선거였는데요 그만큼 기존에 비해 보수세가 옅어진 감이 있었습니다.(정작 1기 신도시들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승리한 곳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후보는 경기도에서 39.28%를 득표하면서 35.58%에 그친 이회창 후보를 3% 이상의 차이로 누르고 처음으로 경기도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김대중 후보는 기존에 경기도에서 우세했던 부천, 안산, 광명, 성남(중원, 수정)을 수성하면서 수원, 안양, 평택과 군포, 구리, 남양주, 용인, 하남 등 동/남부권 도시들을 상당수 가져오면서 승리를 거둔 반면 이회창 후보는 과천과 분당, 일산, 평촌 등 신도시 지역과 파주, 동두천, 의정부 등 경기북부를 차지하면서 표차를 줄였는데…. 경기도지사 출신인 이인제 후보가 23.62%를 득표한 것도 모자라서 보수정당이 우위를 보이는 여주, 이천, 양평, 가평에서 아예 1위를 차지하고 기타 농촌지역에서도 30%대 득표율을 보이면서 이회창 후보의 지지세 일부를 확실히 흡수했습니다.

 

   2) 충청권

 

구시군명 후보자별 득표율 (%)
한나라당
이회창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국민신당
이인제
합계 27.40% 43.91% 26.61%
대전 29.17 45.02 24.07
충북 30.79 37.43 29.4
충남 23.51 48.25 26.14

 

  • 충청권의 결과는 한마디로 DJP 연합의 효과, 그리고 이회창-이인제의 2위 경쟁으로 요약 가능합니다. 우선 김대중 후보가 충청권 전체에서 43.91%라는 높은 득표율(충남 48.25%, 대전 45.02%, 충북 37.43%)를 기록하면서 대전/충남/충북을 석권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김종필의 영향력이 강한 순서대로 득표율이 높았다는 건데 그만큼 DJP 연합의 힘이 컸다는 반증이죠.

그리고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회창, 이인제 후보간의 격차가 매우 적었는데요 이회창 후보는 27.40%, 이인제 후보는 26.61%로 불과 1%도 안되는 차이로 이회창 후보가 2위를 차지했습니다. 하필 두 후보 모두 충남에 연고를 둔 후보들이다 보니 의도치 않은 팀킬이 되버린 셈인데 웃긴건 두 후보가 각각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곳은 충북이었다는 겁니다. 본인들의 고향인 충남에서는 이인제 후보가 승리하긴 했지만 여기는 또 김종필의 힘이 막강했기 때문에 큰 재미를 봤다고 하기에는 좀 애매했고요.

 

  • 대전 : 김대중 후보는 DJP 연합에 힘입어 대전에서 서울보다 높은 45.02%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이회창(29.17%), 이인제(24.07%) 후보를 확실하게 눌렀습니다. 세부적으로 봐도 전 자치구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었죠. 다만 지금 기준에서 봤을 때 특이한 점은 이회창 후보가 대전에서 30% 득표율을 넘긴 2곳은 서구(을)와 유성구였다는 건데요, 이 지역들이 지금은 민주당이 더 우세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소 의외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당시 수도권 1기 신도시에서도 이회창 후보가 우세했다는 것과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다고도 판단됩니다.
  • 충북 : 충북은 대전/충남과는 다르게 보수가 우세한 스윙보터 성향의 지역이었는데, 그 양상이 다소 특이하게 나타났습니다. 우선 김대중 후보는 충청권에서 제일 낮은 37.43%의 득표율을 보였지만 이회창(30.79%), 이인제 후보(29.40%)와 비교하면 그래도 넉넉한 차이였기 때문에 무난하게 이길 수 있었습니다. 김대중 후보는 청주시.청원군을 가져온데다 남부지역인 보은, 옥천에서는 무려 45%의 득표율을 기록(이건 당시 해당 지역 맹주였던 이용희 전 의원의 힘이 컸습니다)하면서 충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던건 충주와 제천이었는데요, 인접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충주는 이인제-김대중-이회창, 제천은 이회창-이인제-김대중 순으로 득표율이 높은 묘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 충남 : 김종필의 홈그라운드이면서 이회창(예산), 이인제(논산) 후보의 연고가 있는 지역이라 결과가 주목되었는데, 역시 30년 넘는 정치경력의 김종필의 힘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했습니다. 김대중 후보는 충청권 뿐만이 아니라 비호남권에서 가장 높은 48.5%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확실한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비록 예산군을 이회창 후보에게 내주면서(42.97% : 42.01%) 전지역 석권에는 실패했지만 나머지 지역에서 모두 크게 이기면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이인제 후보의 고향인 논산에서는 김대중 44.51%. 이인제 41.00%의 득표율로 다른지역에 비해 이질적인 1,2위 경쟁이 벌어졌죠.

 

   3) 호남

 

구시군명 후보자별 득표율 (%)
한나라당
이회창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국민신당
이인제
합계 3.33% 94.41% 1.49%
광주 1.71 97.28 0.66
전북 4.54 92.28 2.14
전남 3.19 94.61 1.4

 

 

  • 그간 2번의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압도적 성원을 보내줬지만 한계 또한 절감했던 호남 유권자들은 이번에야말로 김대중 후보를 당선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호남권 전체 득표율 94.41%라는 압도적 수치로 나타났고요. 지역별로 보면 그나마 낮은 전북에서 92.28%의 득표율이 나타났고 전남 94.61%, 광주는 무려 97.28%라는 전국 최다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아마 이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들 것 같습니다. 호남 전체 표가 324만 6천여표였는데 그 중에 김대중 후보가 얻은 표는 306만 4천여표였으니 그 힘이 얼마나 컸는지는 짐작이 갑니다.(물론 그러고도 영남에서 그 이상으로 표를 더 내주면서 합계가 마이너스가 되긴 했지만, 그걸 충청+수도권 표로 또 만회하면서 승리가 가능했던 겁니다) 워낙 득표율 자체가 넘사벽인데다 지역간 차이도 크지 않아서 세부 분석은 하지 않겠습니다.

 

 

   4) 대경

구시군명 후보자별 득표율 (%)
한나라당
이회창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국민신당
이인제
합계 66.89% 13.14% 17.73%
대구 72.65 12.53 13.06
경북 61.92 13.66 21.76

 

  • 보수세력의 아성인 만큼 이회창 후보가 이기는 건 당연했는데, 그 득표율이 좀 미묘했습니다. 이회창 후보 입장에서는 내심 70% 이상의 득표율을 바랬을 텐데 실제로는 그에 살짝 못미치는 66.89%(대구 72.65%, 경북 61.92%)에 그치면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습니다.(그래서 박근혜 후보가 12년 대선 당시 이 지역에서 80% 가까운 득표율을 보인게 대단한 겁니다) 오히려 그간 여기서 매번 한 자릿수 득표율에 그쳐 고전했던 김대중 후보는 그래도 13.14%까지 득표율을 올리는 데 성공했고, 이인제 후보 또한 17.73%로 나름 적지않은 표를 가져갔습니다.
  • 대구 : 이회창 후보가 대구에서 기록한 72.65%는 그 이전 대구에서 제일 높았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을 때 득표율보다 더 높은 수치였습니다. 비록 대경권 출신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회창이 보수정당의 대표이기도 했고 김대중에 대한 반감이 전국에서 가장 큰 지역이었던 만큼 전국에서 가장 이회창 후보 득표율이 높은 곳이 되었습니다. 김대중 이인제 후보는 모두 12~13% 득표율에 머물렀으니 그만큼 대구 유권자들에게 이회창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죠.
  • 경북 : 대구와는 반대로 이회창 후보가 은근 고전한 지역이었습니다. 대구보다 무려 10%나 넘게 낮은 득표율을 보였는데요(역대 대선에서 대구와 경북이 이정도로 격차를 보인 적은 지금까지도 없습니다), 특히 강원, 충북과 인접한 경북 북부지역에서 이인제 후보에게 20% 후반 ~ 30% 초반의 득표율을 허용하면서 상당 부분 표를 깎아먹은 게 치명타로 작용했습니다. 김대중 후보는 비록 3위에 그치긴 했지만 박태준과의 연대가 있었던 덕분에 포항제철의 근거지였던 포항 남구에서는 15% 안팎의 득표율로 나름 선전했습니다.

 

 

   5) 동남

구시군명 후보자별 득표율 (%)
한나라당
이회창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국민신당
이인제
합계 53.79% 13.67% 29.99%
부산 53.33 15.28 29.78
울산 51.35 15.41 26.69
경남 55.14 11.04 31.3

 

  • 아마 이회창 후보의 낙선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지역이 바로 이 동남권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회창 후보가 이기긴 했지만 이인제 후보가 무려 30%에 근접한 득표율을 올리는 바람에 대경권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53.79%에 그쳤기 때문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이회창, 이인제 후보는 둘다 경남-부산-울산 순으로 득표율이 높았는데요, 역으로 김대중 후보는 울산-부산-경남 순으로 득표율이 높았던게 특이합니다. 여기서 이회창 후보가 생각만큼 재미를 못 봤던 이유는 바로 김영삼 대통령과의 미묘한 관계 때문이었는데요, 이회창 후보가 대선 기간 김영삼 대통령 측과 대립각을 꽤나 크게 세우면서 비록 레임덕으로 지지율이 떨어진 상태이긴 했지만 그래도 김영삼에 대한 나름의 애정이 있었던 이곳 지역민 일부가 반 이회창 정서로 이인제 후보에게 표를 일정부분 나눠준 게 상당히 뼈아팠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김영삼 대통령의 고향인 거제시의 1위라 이인제 후보라는 점에서 더 와닿는 결과죠.
  • 부산 : 득표율 자체는 동남권 전체에 수렴하는데 지역별로 은근 미묘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서부산, 지금의 낙동강 벨트의 결과가 그랬는데요 이회창-김대중-이인제 후보의 득표율이 48.04% - 15.94% - 34.54%로 나타나면서 이회창 후보가 여타 부산지역에 비해 5%나 까먹었습니다. 훗날 낙동강 벨트가 상대적으로 부산에서 보수-민주 세력간 격전지로 변모한 점을 생각하면 참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수치죠.
  • 울산 : 1997년 대선은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되고(1997년 7월) 치뤄진 첫 번째 선거였습니다. 결과는 이회창 후보의 승리이긴 했는데 영남 전체에서 가장 낮은 51%대에 그쳤다는게 참 묘했습니다. 도심이었던 중구와 남구에서는 50% 중후반을 넘겼지만 울주군에서 50%에 그쳤고 공업벨트인 북구와 동구에서 45%를 채 넘지 못한 게 상대적으로 울산에서 고전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울주군은 이인제 후보가 30%를 넘었던 반면 동구에서는 이인제 후보와 김대중 후보 모두 20%를 넘었고, 북구에서는 노동자들의 지지세가 있던 권영길 후보가 14%를 득표했습니다. 이때부터 울산에서의 진보정당 돌풍이 예고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경남 : 호남 출신이 유권자들이 어느정도 있던 부산과는 다르게 김대중 후보는 경남에서 대경권보다 낮은 11%에 그쳤습니다. 대신 여기는 이인제 후보가 31.3%를 얻으면서 이회창 후보에게 적지않은 타격을 줬습니다. 아무래도 이회창-김영삼의 대립 양상이 영향을 줬는데 특히 낙동강 벨트와 김영삼의 본거지였던 남해안 동부에서 그 여파가 제대로 나타나면서 거제시는 아예 이인제가 1위를 차지하면서 이회창의 영남 전지역 석권을 저지했죠. 이인제 후보는 그 외에도 김해에서 40%를 넘기고 통영, 양산, 고성에서 30% 후반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이회창 후보의 발목을 확실하게 잡았습니다. 물론 서북부 경남은 그런거 없이 이회창 후보가 여유있게 이기긴 했지만 단 한군데에서도 65%는 넘기지 못하면서 입맛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6) 강원/제주

 

구시군명 후보자별 득표율 (%)
한나라당
이회창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국민신당
이인제
합계 41.56% 27.93% 28.35%
강원 43.19 23.76 30.94
제주 36.59 40.57 20.47

 

 

  • 강원 : 여전히 김대중 후보에게 강원도는 쉽지 않았습니다. 예전보다는 높은 득표율이긴 했지만 25%를 넘는데는 실패하면서 이번에도 2위조차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특히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불과 1년전이었기 때문에 대북 이슈에 더 민감할 수 밖에 없었던 점도 있었습니다. 이회창 후보는 강원도 3대 도시인 춘천, 원주, 강릉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었고 특히 강릉에서는 강원도 전체에서 가장 높은 50% 후반의 득표율로 압승했지만, 의외로 영서지역 군 단위에서 상당부분 이인제 후보에게 1위를 허용하면서 득표율이 43.19%에 그쳤습니다. 이인제 후보의 경우는 인제, 화천, 철원, 양구 등 영서권의 군지역들에서 꽤나 재미를 보면서 홈그라운드인 경기도와 충청남도보다 더 높은 30.94%의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비록 강원도 표 자체가 적은 관계로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지만요.
  • 제주 : 지금 보면 놀랍겠지만 김대중 후보가 1997년 제주에서 1위를 한 것은 민주당 후보가 제주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사례입니다. 세부적으로 봤을 때 전국 득표율과 상당히 비슷했는데 제주의 중심이었던 제주시에서는 이회창-김대중 양자간의 차이가 0.07% 차이에 불과했고 북제주군 또한 3% 이내의 차이로 김대중 후보가 신승했습니다. 반면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에서는 10% 이상 격차로 승리하면서 제주도를 확실히 가져올 수 있었는데요, 이는 당시 북제주 지역에 보수정당의 중진급이었던 현경대, 양정규 의원의 영향력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쨌건 이 때를 기점으로 민주당은 제주도에서 서서히 영향럭을 확대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는 17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20년 가까이 총선에서는 우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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