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프로 질리게 나오네

이젠 뭐 하다하다 전참시에서도 애 키우는 모습이 나오냐... 진짜 세상 오만 티비프로에서 툭하면 결혼, 육아 영상을 트는데, 정말 보기 싫다. 단순히 똑같은 포맷의 예능이 반복돼서 그러는게 아니다. 육아 예능을 볼 때마다 저출산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게 정말 싫다. 

 

 요즘 청년들이 '아이 키우는 기쁨' '결혼 생활의 즐거움'을 몰라서 결혼을 안하고 아이를 안 낳을까? 방송에서 아이랑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면 청년들이 옳다구나 하고 아이를 낳을까? 청년들을 대체 뭐로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육아프로를 싫어하는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 육아프로는 결혼이나 육아를 원치 않는 청년들도 꽤 있다는걸 무시한다. 혼자 살고싶은 사람, 동거로 만족하는 사람, 결혼은 했으나 아이는 낳기 싫은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꼭 아이를 낳아야만 행복한 삶인가? 다른 방식의 행복한 삶은 존재해선 안되는건가? 

 

두번째, 입양해서 아이를 기르는 사람들의 생각도 무시한다. 티비에 나오는 육아 영상은 거의 대부분 부모가 '직접' 낳은 아이만 나온다. 입양해서 아이를 기르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꼭 부모가 배 아파서 낳은 자식만 티비에 나올 자격이 있나? 입양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많이 좋아졌다곤 하지만, 육아 프로만큼은 아닌가보다. 

 

지난 번에 사유리 씨가 자녀 분과 육아예능에 나온다고 했을 때 난리가 난게 생각난다.  '이성끼리 혼인한 뒤 직접 낳은 자식'만 육아예능에 나오라는 법은 없는데.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게 저출산 문제 해결의 첫번째 열쇠인데, 육아예능은 이것에 대해 지나치게 외면한다.

 

세번째, 지나치게 잘 산다. 대다수의 청년들은 꿈도 꾸지 못할 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방송에 나오는게 세 번째 문제이다. 아이를 낳기 싫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아이를 낳고 싶은데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못하는 사람들에게 박탈감이라도 주려는 속셈인가?지나치게 잘 사는 사람들이 나와서 육아를 하는데, 이걸 어느 청년이 보고 결혼과 육아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질까? 상대적 박탈감만 들지 않을까? 

 

네번째, 저출산 문제를 너무 우습게 본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아이 기르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 저출산이 나아질거야' 따위의 근거없는 믿음을 보는 느낌이랄까. 위에서도 말했지만, 지금 청년들이 '아이 기르는 기쁨'을 몰라서 이러겠냐고. 노동시간은 가면 갈수록 길어지고, 월급은 최저임금에서 겨우 왔다갔다하고, 육아휴직도 제대로 보장이 안되고, 결혼하고 아이 기르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게 가장 큰 문제인데. 

 

이런 현실은 전부 무시한채 육아예능만 주구장창 틀어주면 세상이 바뀌겠냐고. 유튜브나 커뮤니티 댓글도 마찬가지다. '약간만 내 삶을 포기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려요~' 따위의 듣기 좋은 말은 저출산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지금 내 코가 석 자인데 뭘 포기해... 

 

저런 말 할거면 제발 돈이라도 주면서 했으면 좋겠다. 다만 5천원이라도 주면서 훈수를 두면 모르겠는데, 그냥 무식하게 저딴 말을 내뱉으면 청년들이 생각을 바꿀 것 같나? 

 

이럴바엔 저출산 문제를 얘기하지 마라. 근로시간은 가면 갈수록 길어지고, 물가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고, 육아휴직같은 기본적인 제도도 보장이 안되는데 누가 아이를 낳을까? 육아의 기쁨만 얘기하면 다 해결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저출산 문제를 얘기할바엔 그냥 입을 다물어라. 

 

마지막으로, 요즘 청년들 중에 티비 안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고 있을까? 저런 예능 만들면 청년들의 부모 세대가 주로 볼텐데... 그 분들은 방송을 보면서 '요즘 애들이 아이를 안 낳아서 문제야...'만 반복할거고. 대체 무슨 이유로 육아예능이 계속 나오는건지 모르겠다. 

 

빨리 자취해서 티비 없는 곳에 살던가 해야지. 너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