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꿈을 꾸며 산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 잡고 걷고, 팔짱 낀채로 걷고, 포옹하고, 데이트하고, 다정하게 얘기하는 것.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게 실현 가능한 꿈이겠지만 나는 아니다.
연애를 하기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부족하고 이상하니까. 자기비하를 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봐도 난 이상하거든.
사실 호르몬을 맞기 전까진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느낌을 몰랐다. 밖에서 사람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걸 뭔가 꿀꿀한 감정을 느꼈지만, 그게 다였다.
좋아하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으니 연애를 해야 할 필요성도, 이유도 찾지 못했다. '어차피 연애의 결말은 결혼 아니면 이별인데 대부분은 헤어질거고, 그럼 연애를 왜 하지?'같은 무식한 생각만 했다.
그러던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갖게 되었으니, 호르몬을 맞은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걸 안 맞았다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평생 몰랐을테니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친구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감정을 못 가졌을테니까. 호르몬 맞은 걸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나 자신이라 사랑을 할 수 없는데, 이제서야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실제로는 사람 만날 기회가 생기면 이런저런 이유로 피하면서. 근데도 연애하고 싶다는 망상만 계속 하게 된다.
현실에서는, 특히 내 상황에서는 연애를 하려면 내가 노력해야할 것도 많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도 만나야 한다. 심지어 이성도 아닌 동성을. 내가 생각해도 이게 얼마나 어려운 조건인지 잘 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호르몬 투여나 동성연애 선호를 제외하더라도 심할 정도로 아싸 + 대인기피 + 말더듬인데 누구랑 연애를 할 수 있겠나. 사람과 같이 대화하는 법조차 모르는데.
그래서 난 오늘도 망상을 한다. 어차피 현실에서는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만나면 너무 어색하고 불편해서 힘드니까. 내가 만든 환상의 세계에서 내가 하고 싶은 연애를 꿈꾸며 살고 있다.
상상의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내가 좋아하는 가상의 사람을 설정하고 그 사람과 손 잡고, 팔짱 끼고, 포옹하고, 데이트하고, 다정하게 얘기하는 상상을 주로 한다. 상상의 끝은 대부분 결혼해서 아이를 낳거나 입양해서 기르는거다.
몇 달 동안 집에서 상상만 했다. 상상이라도 해야 기분이 좋아진다. 연애하는 상상을 해야 미친듯이 혼자 웃으니까. 그래야 꿀꿀한 기분이 조금이라도 사라지니까. 물론 망상이라는 걸 깨달은 뒤엔 한없이 우울하고 외로워지지만.
그렇게 난 오늘도 연애 상상을 하고 있다. 근데 웃긴건, 나는 객관적으로 연애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아는데도 자꾸 다른 생각이 든다. 취업하고 나서도 분명 집 - 회사만 반복할거고, 회사에서도 조용히 일만 할게 뻔해서 연애를 절대 못 할 텐데도 자꾸 좋은 사람이 어디선가 나타날거라는 상상을 한다.
나도 안다. 이게 말도 안되는 상상이라는거. 근데, 이런 상상이라도 하고 싶다. 이렇게라도 해야 외롭고 쓸쓸하고 우울한 기분이 줄어드니까. 나도 밖에 보이는 커플처럼 손잡고 걷고 싶으니까. 다정하게 웃으면서 얘기하고 싶으니까. 둘이서 놀러가고 싶으니까. 포옹하고 싶으니까.
그래서 난 오늘도 불가능한 꿈을 꾸며 산다. 아마도 평생 이렇게 살 것 같다. 고등학생 땐 대체 누가 나이 먹고도 주변에 사람 한 명 없이 혼자 사나 싶었는데, 그게 내가 될 줄이야.
연애라는 불가능한 꿈을 꾸면서, 지금과는 다른 10대, 20대의 삶을 상상하면서 오늘을 살아간다. 솔직히 가끔은 이렇게라도 살아가야 한다는게 싫다. 대체 무슨 낙으로 사는건지. 대체 이 말도 안되는 망상을 언제까지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은 지금처럼 살고 싶다. 현실에서 사람을 만나긴 너무너무, 진짜 정말 너무 힘드니까. 근데 연애는 하고 싶으니까. 고등학교 때 연애하던 반 친구들이 새삼 부러워지는 밤이다. 나는 아마 연애할 때의 감정을 평생 못 느낄텐데 친구들은 고등학생 때 그 기분을 느꼈으니.
기분이 꿉꿉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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