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당 몰락 시작은 공천실패 + 연비제 위성정당 계산 못한 때부터라 봅니다.
16년 문예위 사태부터 진중권 복당까지 실망할 것이 어디 한두개였겠습니까만...
당시 정의당 (최소 선거지도부)는 최소 비례로 10석이상 당길 자신이 있었다 봅니다. 그래서 당시 조장관에 실망한 청년들을 달랜다며 청년비례를 1,2번으로 꽂는 파격을 보여줬죠.. 그 '청년정치인'들에 대한 사후적 평과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근데 이상한게 또 장애인 쿼터는 7번, 18번, 28번에 농어민은 14번입니다. 이들이 청년정치에 미쳐서 다른 정체성보다 청년을 더 중요하다 봐서 그랬을까요? 아니겠죠 아마 10번대 이상 후보까지 당선될 거라 보고 대충 비례순번 짜다가 탈이 난 겁니다.
자한당은 결국 위성정당을 만들었고 민주당도 그 말도많고 탈도 많은 시민당을 창당해 대응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의당은 비례 5석에 그치고 박창진 사무장이나 양경규씨같은 나름 대중 혹은 당의 지지를 받던 사람도 낙선합니다. 그리고 가장 상징적인 청년정치인의 역량부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파국으로 치닿습니다.
이건 모두가 아시는 이야기일 겁니다. 하지만 당시 가장 안일했던 건 누구였는지 제 눈에만 보이는 걸까요?
댓글
댓글 쓰기어쩌겠습니까. 본인들이 저지른 업보인데..
근데 정의당은 일관성도 없고, 도대체가 정당의 지향점도 모르겠고, 아니 뭐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