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세력의 집권과 사법체계의 우경화
“지상에 있는 지옥불 가운데 대법정처럼 지독한 곳은 어디에도 없어. 그런 곳은 개정 기간 중 가장 바쁜 날에 땅속에다 지뢰를 파묻어, 위쪽과 아래쪽, 높은 놈과 낮은 놈은 물론 거기에 관여하는 놈 모두랑 기록과 법률과 선례까지 모조리 모아놓고 화약 천 톤을 터트려서 깡그리 날려버려야 해, 조금이라도 개혁하려면!”
- 찰스 디킨스, <황폐한 집> 中 -
찰스 디킨스가 1853년에 저술한 책 <황폐한 집>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책은 여러 유언들의 상반된 주장으로 인해 대법원에서 벌어지는 ‘잔다이스 대 잔다이스 소송’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당시 잘못된 국가의 사법제도가 정착했을 때 그 피해는 온전히 무고한 시민들에게 돌아가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당대의 암울한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영국의 정의와 형평의 상징인 형평법원(High Court of Chancery)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운영되는 공간이 아닌 일부 특정 계층의 이익과 주장으로 지배되어 소송 당사자들의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야기한다. 효율적이지 못한 법, 서민층에 대한 무관심, 위생적이지 못한 환경, 법의 부정의(injustice of law)라는 결과들은 우연에 기인한 것이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19세기에 존재했던 영국 사법체계의 횡포는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고 한 층 진일보된 사법체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은 타당한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 6월 24일 미 연방대법원이 낙태 합법화 판례인 이른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함에 따라 우리는 다시금 과거 영국 사법체계의 횡포를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미 연방대법원의 퇴행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총기 규제 법안의 무효, 정교분리 원칙이나 친환경 정책을 무력화시키는 등 진보적인 법안들이 하나 둘씩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일이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답은 트럼프에게 있다. 그는 재임 시절 무려 3명의 대법관을 임명할 기회를 얻음으로써 미 연방 대법원의 전통적 대법관 이념 지형인 ‘진보 : 중도(스윙보터) : 보수 = 4 : 1 : 4’의 구도를 ‘진보 : 보수 = 3 : 6’의 구도로 바꾸어 놓았다. 1970년대 이후 연방대법원은 중도 성향의 대법관 1명을 지명하는 관례를 유지하면서 이념적 균형을 맞춰왔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 임기 말인 2020년 진보 성향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별세로 생긴 공석에 보수 성향의 배럿 대법관을 임명함으로써 연방 대법원의 보수화가 진행되었고 공화당은 인준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이 일을 소위 ‘강 건너 불 구경’ 하듯이 볼 상황이 아니다. 왜냐하면 향후 윤석열 정부 5년동안 역사상 최대 규모의 법관들이 교체되기 때문이다. 우선 헌법 재판관이 전원 교체될 예정이며 대법관 14명 중 대법원장을 포함한 12명의 인사가 단행될 것이다. 누구나 예상하듯 새롭게 임명될 법관들의 성향은 보수적일 것이므로 향후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보수 이념적 편향성이 존재할 공산이 농후하다.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은 5명의 진보 성향 인사들을 대법관에 임명함으로써 이념적 다양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여전히 보수 우위의 사법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다시 보수 편향적 성향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사상 초유의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판결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과 같은 시대착오적 퇴행 판결이 발생하였다. 정경유착, 정검유착에 이은 ‘정(치)(사)법유착’이 발생한 것이다.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조치’가 위법 판결을 받은 사례를 들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전교조와 마찰이 있었던 정부는 전교조에 대해 법외노조 처분 조치를 내렸고 전교조는 이에 대해 위헌 소송과 가처분 신청을 했다. 그러나 보수 성향 헌법재판관들이 즐비한 헌재는 합헌 판결을 내렸고 열흘 뒤 대법원은 전교조의 가처분 소송 항고심을 파기했다.
그런데 이 판결을 뒤짚었던 대법관이 바로 김명수 현 대법원장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첫 대법원장이며 이후 헌재에서 여러 진보적 판결에 동참하면서 보수 편향적 사법 구도를 변화시키는데 일조했다. 이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 당시 강력한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김기영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와 이석태 당시 변호사 등의 진보적 인사들이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됨에 따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합헌 판결’이나 ‘양심적 병역 거부저 처벌 위헌 판결’ , ‘교원의 정치단체 가입을 금지한 조항에 대한 위헌 판결’과 같은 진보적 판결들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9월 4일로 임기가 끝나는 김재형 대법관의 후임자를 인사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법관 인사인만큼 후임 대법관에 대한 이념적 성향과 과거 경력 등의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정부의 검찰 편중 인사를 놓고 봤을 때 문재인 정부 때부터 없어진 검찰 출신 법관 임명 사례가 다시금 부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되었던 보수 성향 인물의 대법관 인사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9명의 재판관들은 대통령이 3명, 대법원장이 3명, 국회 3명의 추천으로 구성된다. 특히 대법원장 또한 대통령이 임명하는 만큼 최악의 경우에는 9명 중 최대 7명까지 친윤 보수 성향의 재판관이 임명될 수 있다. 그리고 국정원과 수구정당의 종북몰이 합작품인 ‘통합진보당 위헌 정당 해산 판결’은 8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앞으로의 미래가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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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정신 단디 차리고 있어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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