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 재미있지는 않은 판례: 2013다91672 판결
https://casenote.kr/%EB%8C%80%EB%B2%95%EC%9B%90/2013%EB%8B%A491672
같은 종류의 채권(금전채권이면 금전채권끼리)이 쌍방 당사자 사이에서 대립하고 있을 때(예를 들면 내가 A한테 돈 빌려준게 1천만원, A가 나한테 물픔대금을 받아야 하는게 800만원), 내가 퉁치려는 채권이 변제기에 도래하고 있고, 채권의 성질상 퉁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면 너와 나 사이에서 그 채권끼리 퉁치자 라고 의사표시를 통해 상계라는 것을 할 수 있음
사실 법적으로 정의하지 않아도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행위임. 뭐 내가 어제 밥 샀으니까 오늘은 니가 밥 사라 같은 가격으로 퉁치자 같은거. 그런 점에서 간이로 결제하는 것과 같은 권능을 가지고 또 내가 가진 채권의 지급을 담보받을 수 있는 권능도 가짐
문제는 '성질상 상계 불가능한 채권'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이거인데
예컨대 '너 오늘부터 5월 1일까지 집 밖으로 나가지 마'라는 내용의 계약이나 '너 나한테 일 하나 해줘라' 같은 내용의 계약은 성질상 당연히 안되는 것이고, 또 이제 기타 법률로 정한 채권은 상계할 수 없음
대표적으로 압류명령이 송달된 채권의 경우에는 상계가 불가능함. 압류에 대해서도 조금 설명해야 하는데,
A와 B가 매매계약을 맺고, A가 매도인, B가 매수인이라고 하자. 그런데 모종의 사유로 계약이 해제되었고, B가 A에게 이미 돈을 지급해서 그 결과로 부당이득반환의 채권을 쥐고 있는 상황임
그런데 B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있는 C가 그 채권을 실현할 목적으로 A와 B 사이에 오가야 할 돈을 압류해버림. 채권을 압류하면 그 채권을 변제해서도 안되고, 다른 사람에게 처분해서도 안됨(간략). 그 후에 자신의 채권을 실현하기 위해 압류대상인 채권에 전부명령이나 추심명령을 하면 되는데 대충 넘어가고
여기에 문제를 더하기 위해 'A가 B에게 돈읇 빌려준 사실이 있다'라고 치자. 그럼 상계의 요건을 충족하니까(한번 연습삼아 뭐가 문제가 되는지 생각해보면 좋고) 나 내가 B한테 돈 빌려준 적 있거든? 그걸 자동채권으로 삼아서 C 니가 나한테 돈 달라고 하는거 상계할게! 라고 항변할 것이다.
그럼 압류명령의 '압류채권자의 채권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과 상계의 '상계자의 채권을 담보하기 위한 기능'이 충돌하게 된다. 뭘 기준으로 상계를 허락하여야 할까? 이 경우에는 '압류명령이 상계자에게 송달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 상계자가 상계하려는 자동채권이 압류명령 송달 이전에 형성된 것이라면 담보 가능할 것이라는 신뢰를 보호해주고, 그 이후에 생긴 것이라면 압류채권자를 더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압류명령이 송달되기 이전이라면 상계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을 테고, 그 이후라면 너무 속이 보이니까...
그런데 전세권저당권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전세권을 설정할 때 전세금을 주어야 하는데, 그 전세금을 혼자서 낼 수는 없으니 은행 등에서 돈을 빌려야 할 것 아닌가? 근데 돈을 빌리려면 담보가 필요한 것이고, 담보?무주택자?담보?몰?루 상황이 되니, 전세권에 저당권을 설정하는 것이 전세권저당권이다. 전세기간이 끝나면 어쨌든 전세금은 돌려받을테니...
이 전세권이라는 물권은 두가지의 성질이 있어서, 하나는 기간동안 그 목적물을 사용,수익할 수 있는 용익권능이고, 하나는 그 기간이 끝났을 때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담보권능이다. 전세권저당권은 전자의 권능에 설정된 것이다. 그래서 전세기간이 끝나면 저당권에 일종의 흠결이 생기게 되어 소멸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우리 법은 그런 경우 저당권을 설정한 자가 '물상대위'라는 것을 통해 전세금의 반환청구권을 대신 행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물상대위를 위해서는 법조문상 압류가 행해져야 하기에, 전세금반환채권에 압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 판례에서는, 그런데 전세권을 설정해준 집주인이 전세금을 쌩으로 돌려주기 싫었던 것인지 전세권자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다. 저! 상계! 할건데요! 라고 했을 것이다. 글을 지금까지 잘 따라왔다면, 오 이번 경우도 압류명령 송달일을 기준으로 나누나요? 라고 할텐데 틀렸다.
이번에는 전세권저당권 설정일을 기준으로 상계가부가 나뉜다. 참으로 웃긴 일이다. 보통 집주인이 등기부 매일매일 떼서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은행이 저당권 잡았다는건 압류명령이 송달되고 나서야 알텐데, 앞의 판례의 논리를 그대로 끌어쓰면 좀 불공평하지 않나?
라는 평석을 교수님이 붙이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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