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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 '언어의 정원'과 애니메이션의 '순수 영화'로서의 가치

알렉산드르_뷰코크 알렉산드르_뷰코크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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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28RzTohVmc

 

언어의 정원은 '비'를 계기로 만나게 된 남녀가(뭐 제자와 선생의 금단의 사랑이라는 요소도 있다만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나가고, 서로에게 솔직해지는 과정을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스펙터클하거나 절절한 사랑은 없지만, 그런 담백한 순문학에 가까운 감성이기에 저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 중 '초속 5cm'와 더불어 이 작품을 최고로 꼽습니다.

 

여주인공은 고전문학 교사라 일본의 '단가'를 잘 아는데, 그래서 남주인공과의 첫 만남에서 만요슈의 단가를 하나 읊습니다.

 

鳴る神の

少し響とよみて

さし曇り

雨も降らぬか

きみを留めむ

대충 해석하자면 '우레소리가 조금씩 울려오고 구름이 흐려, 비라도 내린다면 그대 붙잡으련만' 이네요. 일본 시 특유의 575 식으로 끊어 읽는걸 생각해서 운율을 맞춰봤습니다. 

 

이 말을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대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비가 내릴 때 뿐이니, 그대가 떠나지 않았으면 하여 비가 내리길 바랍니다' 정도네요. 서정적입니다. 여주인공의 작중에서의 트라우마를 생각한다면, 먼저 사람에게 다가서기 힘들면서도 동시에, 이 인연이 그저 비가 오는 특별한 상황에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의사 표시인 것입니다.

 

남주인공은 그렇게 공부를 잘 하지는 못하는 고딩이라(뭐 우리로 따지면 대충 사미인곡에서 '님이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님 좇으려 하노라'라는 가사에 대충 속미인곡으로 대답해야 하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네요) 이걸 모르다가 클라이맥스에 가서야 말뜻을 알고 답가를 보냅니다.

 

鳴る神の

少し響とよみて

降らずとも

吾は留まらん

妹し留めば

 

비슷하게 해석하면 '우레소리가 조금씩 작아지고 비가 그쳐도, 나는 떠나지 않으리 그대가 말라 하면' 정도네요. 비가 그치더라도, 그대가 원한다면 나는 여기서 그대와 인연을 이어나가겠다. 정도겠어요. 남주인공이 자신에게 솔직해지면서 드디어 '둘의 일시적인 관계'를 '일상적인 관계'로 이어나가고 싶다는 소리입니다.

 

그들의 당초의 약속은 '비가 오면 만난다'였기에, 비가 늘 내리던 장마철에는 항상 서로를 마주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일본의 장마는 우리보다 짧은지라, 금방 비는 그치고 이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의 단절'을 '서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이죠. 핑계를 대는 삶 보다는 능동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이 단가를 곱씹을 때 영화가 더 아름다워져요.

 

Rain이라는 곡은 그런 두 주인공의 내면을 잘 보여주는 띵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이게 원곡이 따로 있기는 해요

 

https://youtu.be/F1p3f-ecaPk

 

멜로디가 많이 다릅니다. 이 음악은 더 흥겨운데, 언어의 정원은 일부러 비가 주는 차분한 이미지를 강조한 느낌이 드는 편곡을 했죠.

 

말로는 표현하지 못해 그대를 떠나보내려다가, 솔직하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떠나가려는 그녀를 잡으려는 남성 화자의 가사가 서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런 '단가'를 매개로 한 서로에의 솔직한 소통은 매우 지지부진하고, 고구마를 먹는 듯한 답답함을 줍니다. 그것 때문에 영화가 가치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왜?'라는 의문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영화가 '현대인'을 묘사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대 사회의 인간은 그 연령대에 맞는 '다움'을 요구받습니다. 학생은 학생답게 공부에 용왕매진할것, 어른은 어른답게 직분에 국궁진췌할것... 뭐 그런 것들요. 이 두 주인공은 그런 베버스러운 '소명'을 조금은 거부합니다. 적극적으로 거부하지는 못합니다. 사회가 너무 닥달하거든요. 소명에 대한 반발을 별난 것으로 매도하는 이 사회에서 둘만이 그것을 서로 이해해주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우리에게도 요구하는 것입니다. '너의 꿈을 추구할 수 있는 너의 공간을 찾으라'고요.

 

뭐 그런식으로,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조금 더 '극적 장치를 편리하게 마련하는' 순수 영화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하네요. 다음 영화는 글쎄요... 뭘 가져와야 할지는 잘 모르겠는데...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중에서 하나 소개해볼까 합니다. 아마 원령공주나 붉은 돼지? 정도가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예술영화의 분류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네요.

 

별로 안씹덕같아요 그니까 함 보세요 하는 시리즈라고 느껴지신다면... 애니메이션에 너무 반감을 갖지 말고 한번 트라이 해주십사... 정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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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애니는 엄청 내용 짜른거구요. 책은 400페이지 가까이 되고 두껍습니다. 소설판도 추천드림
22.06.06.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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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코파시스트
에 그 봤습니다 아무래도 내면적 묘사, 그래서 둘이 마지막에 결국 어떻게된거야???? 라던가 등등을 의도적으로 영화는 가감을 했죠. 근데 그래서 더 '절제된 감정'으로 둘이 하는 고구마 애정행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도시 사회가 보여주는 삭막한 풍경과 빗소리로 인해 차단된 고요한 공간에서 둘만이 보여주는 소통을 말이에요
22.06.06.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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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도 날씨의 아이,너의 이름은 보다 이 영화가 더 좋았습니다... 이 영화보면 비 냄새 나는거 같아요ㅎㅎ

22.06.06.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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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셋컬러즈
주제의식은 많이 비슷하지만 조금 더 대중성을 신경쓴 작품이죠. 어느 쪽 소비자냐에 따라서 조금 갈릴 것 같긴합니다
22.06.06.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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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합니다만, 이 각본들이 감독 특유의 탁월한 작화가 아니었더라도 여전히 그만큼 좋게 느껴질까? 하는 문제는 좀 어렵게 다가옵니다. 미야자키로 대표되는 이전 작가주의 거장들의 무게가 너무 거대해서 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22.06.06.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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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빛깔
그건 미야자키 하야오나 토미노 요시유키 같은 구세대의 거장들이 '환경보전'이나 '하나의 군체로서의 인류 의식의 진화'같은 크고 무거운 주제를 다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호소다 마모루, 신카이 마코토와 같은 현세대의 감독들은 '가족의 구성'이나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압력'과 같은 비교적 미시적인 주제를 다루죠. 둘 중 더 '숭고한 느낌'을 주고 '감명'을 주기 쉬운 것은 아무래도 전자라는 점에서, 미야자키와 토미노라는 양 거장이 전세계에 큰 임팩트를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미시적인 현대인 담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창기 작품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라던가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같은 작품들을 보면 확실히 자본이 많이 투입된 지금의 작품군들과 비교해서 투박한 작화가 눈에 띌 것입니다. 그런 작품에서도 신카이 마코토 테이스트는 확실히 나타난다는 점에서, 비단 '수려한 작화'만이 그의 작품을 평가하는 요소가 되어서는 안되겠죠. 물론 그런 자세한 묘사가 극의 몰입요소가 된다고도 생각합니다.
22.06.06.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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ЈосипБрозТито
비오는 날 잔잔하게 보기 좋은 애니메이션입니다 추천해요
22.06.06.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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