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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1편 - '바람이 분다'를 통해 본 감독 본인의 삶의 투영, '좋아한다'와 '올바르지 않다'의 양가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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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식 사이트)

 

먼저 OST 같이 듣고 가시죠

 

https://youtu.be/qYNvTX_ioYo

 

 

 미야자키 하야오를 읽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크게 꼽자면 첫번째로는 그의 에코페미니즘적 성향에 조명하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하야오 작품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여성상을 분석하며, 환경에 대한 논의를 분석하며, 개인적으로는 '모성' 두글자로 압축하고 싶은 그런 감성을 탐구하는 것도 재미가 있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등장하는 나우시카의 강인함과 모성이라던가, <원령공주>에 나오는 아시타카와 산의 로맨스 아닌 로맨스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환경에 더 방점을 두는게 옳겠네요)

 

 두번째 조명은 '동화의 감성'에 있을 것입니다. 현대인이 잃어버리고 가지는 '환상', 도시 사회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정적이면서도 동시에 동적인 동화 마을의 모습을 그저 있는 그대로 즐기면서 여행을 하는 것도 재미입니다. 그의 작품 중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그리고 <이웃집 토토로> 등에서 그런 정취를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은 이건 현대인 모두의 공통된 감정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일종의 치트키죠.

 

 마지막으로는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얼마나 섞여들어갔는지를 탐구해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야오만큼 자신의 관념을 애니메이션에 그대로 투영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감독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 토미노 요시유키만 해도 자신이 만들어낸 저주받은 걸작 <기동전사 건담>의 스폰서 반다이 때문에 작품 활동에 제약이 많았죠. <중전사 엘가임>이라던가 <전설거신 이데온>, 그리고 <성전사 단바인> 등의 다양한 명작을 만들어낸 그가 <건담> 하나로만 기억되는 것에 (물론 무인편, Z건담, ZZ건담, 역습의 샤아로 이어지는 아무로-샤아 사가는 매우 시사점이 크지만요) 비하면 자신이 독립적으로 스튜디오를 차려 성공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유로운 영화감독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는 영화를 만들 때 자신이 1에서 100까지를 간섭할 수 있는 독점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점에서 시시콜콜한 것 하나까지 그의 영향이 영화에 반영이 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사실 하야오 영화는 어느 정도는 하야오를 비추는 거울인 것입니다. <붉은 돼지>라는 작품이 어찌 보면 이런 작품의 대명사가 되겠고,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영화 <바람이 분다>가 그렇습니다. 

 

 뭐, 하야오의 그런 점 때문에 후계 양성이 지지부진했던 것도 있기는 합니다만 나중에 '지브리 스튜디오'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때 하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비 하야오 감독 작품중에서도 좋아하는 작품이 많습니다. (게드전기같은건 양심적으로 좀 빼고 ㅎㅎ)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네요. 미야자키 하야오는 부잣집 도련님입니다. 그것도 집안이 전투기를 만드는 회사를 경영했습니다. 심지어 그 전투기 중 하나는 제로센이었을 것입니다. 자동차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스바루'라는 기업을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회사는 나카지마 비행기라는 군수기업이 GHQ의 명령에 의해 해산되었다 재결성한 기업인데, 그 나카지마 비행기는 제로센을 만들었던 기업이고, 그 기업의 하청을 받은 것이 미야자키 가문의 공장이었으니까요.

 

 이것만 봐도 그의 비행기 사랑을 조금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뭐든 어렸을 때 겪은 것이 가장 기억에 남기 마련이니까요. 뭐, 그런 환경에 살면서 그는 자연히 군인과 기술자를 많이 접하고, 군인들은 자신들의 업적(으로 포장된 악행)을 떠벌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군국주의적 사고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고도 하죠.

 

 그와 동시에 만화책을 많이 접했다~뭐시기뭐시기부터 어떤 영화를 보고 애니메이션 업계에 뭐시기뭐시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알고 싶으시다면 <일본사를 움직인 100인>이라는 책의 끄트머리에 하야오 소개가 간략하게 있으니, 읽어보시는걸 추천합니다.

 

 그래서인지 미야자키 하야오는 사회주의 혁명에도 관심을 갖기도 했고, 최초의 직장에서 노조를 결성해 탄압받기도 했습니다. 그 나이대 일본인들이 적군파나 전공투와 같은 유혈 투쟁 노선을 걸었던 것에 비하면 평화주의적인 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야오의 사상은 그러니까, 여러가지로 길이 샜는데, 정리하자면, '반전주의', '반극우주의', '자연보호' 정도가 키워드입니다. 근데 그와 동시에 그는 '밀리터리 오타쿠'이기도 합니다. 반전과 비행기가 같이 있는 것이 모순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인도 그걸 알아서 자신의 비행기는 한사코 전쟁을 위한 도구로서의 비행기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게 <붉은 돼지>에서 드러납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기 위한 것이 비행기이지, 무기가 아니라는 것을 항변하죠.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현대 사회에서 비행기를 논함에 있어 '전투기'는 도저히 뗄 수가 없는 그런 카테고리입니다. 애초에 본인부터가 제로센 만드는 회사에서 제로센 보면서 컸는데, 너무 추한 변명이 아닌가 싶네요. 비행기 발전의 역사는 어느 정도는 전투기 발전의 역사고, 본인도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닐겁니다. 그런 모순적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영화가 바로 <바람이 분다>입니다.

 

 주인공인 호리코시 지로부터가 하야오의 인생을 그대로 투영한 듯한 캐릭터입니다.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했지만, 조금은 다른 캐릭터입니다. 성우로 안노 히데아키를 기용한 것은 아무래도 제 사견으로는, 나처럼 살지는 말라는 스승의 조언이 아닐까 싶네요.

 

 비행기가 좋아 비행기를 만들기로 한 소년은 꿈으로 빛나는 남자가 됩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인생의 반려와 운명적인 만남을 나누기도 합니다. 독일의 융커스 사에 견학을 갈 기회를 얻고 독일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기도 합니다. 결국에는 전투기를 만드는 회사에 취직해 자신의 손으로 전투기를 만들게 되지요. 매우 빠른 비행기를 설계하는 것이 회사 내에서의 그의 꿈이 되어서, 매일 일이 끝나고도 설계부 후배들과 공부하거나, 부품 쪽 동료를 초청하여 의견을 듣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평판이 매우 좋은 성실한 젊은이인지라, 그의 직속 상사는 여러 위기에서 지로의 사정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도와줄 정도죠.

 

 그런데 어디까지나 이것은 지로의 '꿈'입니다. 그런데 그 '꿈'이 이루어지면 무고한 사람이 죽습니다. 지로는 작중에서 '이렇게 빨라지려면 기관총을 빼야 하겠는데?'라는 솔직한 감정을 토로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은 비행기를 만들지 못하게 됩니다. 만약 정말로 사람을 죽이는 비행기가 싫다면 일을 관둬야 하겠지만, 자아 실현이라는 명목으로 그는 '올바르지 않은 것'을 방치합니다. 사실상 그것을 좋아한다고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야오는 반전주의자이면서, 반 극우파 지식인으로 항상 꼽히는 사람이면서, 전함이나 비행기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만 봐도 말은 평화주의, 자연을 외치면서 어쩐지 가장 멋있게 그려내는건 토르메키아의 전함이고, 제자 중에 한놈은 아예 환경이고 자시고 로봇이 최고여~ 하는 놈 아닙니까(물론 농담). 이런 모순을 이제 팔순이 넘은 할아버지는(당시에는 칠순을 넘겼겠다만) 이제 변명하기 지친 것이 아닐까요. '아 그래 나 변태새끼 맞다!'라고 고백하는 그런... 그런 모습이기에 저에게는 이 작품이 더 특별합니다.

 

 지로의 인생이 해피엔딩이 아닌 것은 아무래도 이런 자기 흥미 본위로 사는 모순적 인간에게 기다리는 것은 파멸이라는 일종의 자조이자 동시에 주제의식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로는 꿈을 추구하여 그 꿈에 한없이 가까운 (하지만 그 꿈이 되지는 못한) 제로센을 만들어냅니다. 제로센은 빠른 비행기이고, 그 당시 일본의 최선이었지만, 동시에 많은 젊은이를 죽였죠. 지로 본인은 죽지 않았지만요.

 

 대신 죽는 것보다 더욱 비참한 결말을 맞습니다. 그 비행기 제로센은 고철덩어리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자신의 그동안의 인생이 부정당했으며, 그것을 지탱해 줄 연인도 죽었습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적수공권, 자기 몸뚱이 하나 뿐이네요.

 

 근데 또 웃긴 것이, 그래놓고 지로를 두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자 놈은 에고 불안정한 중2병놈이 여자한테 차였다고 전부 죽어버려라~ 해버렸는데, 역시 스승은 스승인지 '꼴값을 떨어서라도 살라'고 합니다. 뭐, 원령공주의 캐치프레이즈도 그렇긴 했네요.

 

 제목 <바람이 분다>는 사실, "바람이 분다, 살아야 한다"를 줄인 것입니다. 원작인 소설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말(뭐 오역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만은)입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로의 작품 속에서의 삶은, 과연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요?

 

 꿈을 좇는 것이 삶이라면, 동시에 그 꿈이 불러온 현실을 직시하는 것 또한 삶일 것입니다. 지로는 꿈만 좇았기에, 비행기 밖의 일은 모두 제삼자의 시선으로만 봅니다. 일본에 전쟁이 나도 '나쁜 것'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않고, 아내가 죽을 상황이지만 '그래도 아내와 살고 싶어서' 아내를 결국 죽음에 몰아넣습니다. 꿈을 좇으면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지로는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로의 삶은 실패한 것이고, 그래서 그는 비극적인 일을 여러번 겪는 것입니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전부 자신이 자초한 결말인걸요. 지로가 삶을 포기한다고 해도, 뭐, 저로서는 크게 비난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로는 그러지 않습니다.

 

 지로는 '살아가야' 합니다. 작품이 끝난 후의 그의 삶은 현실을 직시하고, 그래도 살아나가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겠죠. 하야오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꿈을 좇는다'를 일본의 그 누구보다 충실히 이행한 만큼, 일본과 세계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거창한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겠고, 다만 '인식한다' 만으로 충분하겠죠. 적어도 그 전보다는 나은 단계잖아요.

 

 자신이 행동한 결과를 책임지려는 태도가 어른의 태도겠죠. 책임을 진다는 것은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해버렸는지는 인정하는 것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옹은, 적어도 자신이 만든 작품이 세상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그리고 주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람이 분다>는 그의 솔직한 고백이면서 동시에 이렇게 살라는 할아버지의 삶의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쓰고 나니 기네요. 쳐내는 작업도 글쓰기의 일환이기는 한데... 뭐 그런 연습하는 글쓰기는 아니었어서, 걍 남길랍니다.

 

 하야오 얘기는 3번에 나눠서 할겁니다. 다음게 뭐가될진 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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