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개론과 국민 책임론에 대한 생각
"민주주의란 그렇게나 좋은 것일까? 은하연방의 민주공화정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라는 추악한 기형아를 낳지 않았던가."
"......."
"게다가 경이 사랑해 마지않는, 아...... 이건 내 생각이네만, 그런 자유행성동맹을 내 손에 팔아넘긴 것은 동맹의 국민 다수가 자신의 의지로 선출된 국가원수였네. 민주공화정이란 국민이 자유의지로 자기 자신의 제도와 정신을 타락시키는 정치체제인가?"
"국민을 해칠 권리는 국민 자신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루돌프 폰 골덴바움, 또한 그보다도 훨씬 소인배지만 욥 트뤼니히트 같은 자를 권좌에 앉힌 것은 분명 국민 자신의 책임입니다. 남을 책망할 수 없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그 죄악의 크기에 비하면 100명의 명군이 베푸는 선정도 조그맣게 보일 정도지요. 하물며 각하처럼 총명한 군주가 출현하는 일이 지극히 드문 것을 고려해 본다면 장단점은 명백해지지 않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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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갤과 과음에서 쓰는 두 닉네임의 유래가 된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대사.
은하를 무대로 해 청렴하고 유능한 전제군주 "상승(항상 이기는)군주"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대화 시점에는 황제는 아니었지만)과 무능하고 부패한 공화국의 몇 없는 '올곧고 민주주의에 충성하는' "불패의 마술사" 양 웬리의 대립구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설임. 재밌냐 하면 나는 재밌는데 볼까? 하면 뭐 알아서 하시고...
작품을 보면 카이저 라인하르트가 정권을 잡은 은하제국은 빠르게 혼란을 수습하고 청렴하고 강직한 인재들이 등용되며 그로 말미암아 신민들이 더없이 행복하게 묘사됨. 반면 비열한 기회주의자인 동시에 치킨 호크인 무능한 정부를 뽑아둔 자유행성동맹은 국가 기반이 통째로 붕괴해버려서 제대로 된 군대라고는 양 웬리의 함대 하나밖에 없는 수준. 작품 속 돌아가는 꼬라지만 보면 '아 이거 은하제국이 훨씬 살기 좋겠네'를 부정할 수가 없음. 그만큼 밸런스가 무너진 형세. 동맹에도 올바른 정치가는 있지만 이들은 '신념있는 유약한 지식인'의 틀에서 벗어나질 못하거나 죽음.
그런 무능한 정부 때문에 다 이긴 전투를 강제로 져놓고도 양 웬리는 민주공화정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원망하지도 않음. 그 이유를 황제가 물으니 저렇게 대답한 것.
말 그대로 인민을 해칠 권리는 인민 자신에게만 존재하는 매우 특수하고 동시에 존중받아야 할 권리라는 것임.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을 연달아 뽑아놨지만, 그것 때문에 일개 시민으로서의 나는 존나게 화가 나고 사회가 원망스럽지만, 학도로서의 나, 지식인을 추구하는 나는 그것에 대해 '인민이 인민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 것' 이상으로는 말하지 못하겠음. 윤석열을 뽑아서 그의 잘못된 통치행위에 피해를 보는 그것 자체가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함. 그걸 부정하면서 계속 뽑는다면 뭐 개인으로서는 상종하기 싫은 인간이겠지만 그렇게 하시라고, 자신을 해칠 권리를 행사하시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음.
대신 정확하게 나라가 씹창날 때 "니가 니 권리행사를 니 자신을 해치는 방향으로 조져서 그래요"라고 그말 하나만 날려줄 수 있으면 그만 아닐까. 개새끼라고 할거까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