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재명의 단점은 무엇인가?
고민좀 해보다가 이 글은 써야할 것 같아서 한번 씁니다.
민갤에 썼다간 칼삭+차단 당할거 같은데 그런만큼 이재명 대표 비판도 좀 들어가 있습니다.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재명의 단점은 무엇인가?
2022년 대선을 며칠 앞두고 원희룡 VS 유시민의 100분 토론 매치업이 성사되었을때, 양당 후보에 관해 자기가 안 좋은 얘기를 해달라는 질문에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하나쯤은 져줘도 되는데, 하나도 안 지려고 한다'
사실 당연한 말 아닌가. 세상에 어떤 사람이 지고 싶을까? 그러나 정치를 할 때에는 한번쯤은 져주고 명분을 챙겨야 할 때가 있다.
이재명 대표는 실리주의자다. 다년간의 성공적인 행정 경험은 그를 대권주자로까지 이끌었고, 그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는 거의 처음으로 '경제'와 '실리', '유능'을 표어로 내걸었다. 새로운 가치를 내걸기보다는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이해하고 그것에 집중했다.
또한 그에게는 추진력과 공약이행률로 대표되는 '사이다' 이미지가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에 목말랐던 기존 민주당 지지층 대다수를 자신의 지지자로 만드는 데 성공했고, '엄중'한 행적으로 민주당원들의 혈압만 올렸던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2020년의 위상은 찾아볼 수도 없을 만큼 초라하게 몰락했다.
실리주의자의 장점은 리스크 회피를 통한 최선의 선택을 한다는 점에 있다. 매 순간 유불리와 득실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리더의 덕목이다. 그러나 얄궂게도 정치는 그것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는 역사 속에서 등장했던 수많은 정치인들이 증명한다.
다시 유시민 작가의 말로 돌아가 보자. 그의 말대로, 이재명 대표가 대선 경선 이후에 택한 길 중에 져주는 길은 없었다.
3월의 대선에서 패배했던 이재명 대표는 3개월만에 계양 을 재보궐 선거에서 원내입성에 성공했다. 물론 이 시점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지명된 순간 윤석열 정부는 야당과의 전쟁을 선포한 셈이었으니 이재명 대표에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차기주자들의 자폭으로 인해 민주당의 대권주자 인재풀은 처참한 상황이었다. 원래라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더 말이 안되는 정부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계양 을 주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원내 입성에 성공했다. 필자도 이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원내 입성 다음에는 당권이었다. 당권 역시 대권주자들이 으레 거치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이상할 것은 없다. 여기도 별 코멘트는 없다.
이재명 대표의 지도력은 이후 체포동의안 국면을 거치면서 시험받게 된다. 높은 권리당원 장악력과 반대로 원내에는 그를 반대하는 의원들의 수가 꽤 되어 있었고, 그는 2월 체포동의안 국면에서 기권/무효표 20표로 인해 겨우 부결을 쟁취했다. 낮은 원내장악력에 대한 의구심이 조금씩 언론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는데, 이 국면은 결국 9월 체포동의안이 가결될때까지 이어졌다.
물론 이 건에 대해서는 달리 볼 여지가 많이 존재한다. 이재명 대표는 권리당원의 표 등가성을 높이려고 했고, 비명계 의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이에 반대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이재명 대표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으며 그로 인해 이재명 대표를 비명계 의원들이 축출했다는 설은 민주당 지지자 내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필자 또한 넓은 의미에서 이에 동의한다. 자신이 뭘 해도 반대하는 사람들은 뭘 어떻게 설득하겠는가. 그러나 필자가 중요하게 보는 점은 다른 곳에 있다.
2차 체포동의안 표결 전날 밤, 이재명 대표의 페이스북에는 장문의 글이 업로드되었고, 그 내용은 체포동의안의 부결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 글을 보고 의아함을 느꼈는데, 이미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 그에게 부결이든 가결이든 결과에는 상관없이 이 글을 올린 것 자체가 좋지 않게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 글이 올라왔다는 것은 친명계에서 가결표 단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만약 가/부 여부가 불확실했다면 가만히 있는게 상책이었는데, 이 대표는 자신의 지난 말에 어긋나는 그 글을 올렸고, 다음 날 체포동의안은 1표차이로 가결되며 그의 지도력은 영장실질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치명타를 입었다.
필자는 이재명 대표가 영장실질심사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면 차라리 가결해달라고 페이스북에 올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가 이전에 말했던 '불체포특권 포기'에도 부합하고,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아무도 기각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으니 이는 매우 리스크가 큰 결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리스크가 그나마 적은 부결 확정에 걸었으나 그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그 다음주 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이 나며 그의 리더십이 상처는 입었을지언정 복귀에는 성공했다는 점이다.
근래의 선거제 논의를 보며 필자는 이재명 대표가 또 '리스크 회피'를 최선으로 두고 행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쨌건 그는 대선후보이자 당 대표이고, 대표는 당의 총선 지휘 및 승리를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상황에서 굳이 연동형을 유지해서 국민의 힘 좋은 일을 만들어 줄 이유는 없고, 연동형+패배라는 최악의 경우는 민주당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수다. 어쨌건 이 대표의 대선 가도는 총선 승리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립형으로 회귀하면 이재명 대표가 체면 세우기 나쁘지 않은 정도의 의석을 확보하기에는 더 수월해진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그는 그가 한 말을 또 번복하게 된다. 2022년 2월 말에 민주당 의원 모두가 당론으로 약속했던 정치개혁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또 그의 말이 번복된 것이다.
말이 좀 길어졌는데, 결론적으로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눈 앞의 이익에 심취하여 자신의 말을 바꾸는 행위가 3개월 사이에 두 번이나 일어났다. 첫 번째가 영장 기각으로 묻혔듯이, 이재명 대표는 두 번째 역시 총선 승리를 통해 해프닝으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후자는 대국민약속이었고 당론이었다. 위성정당 때문이라고 변명하기에는 이미 그가 대선기간에 했던 숱한 말들이 이를 궁색하게 만든다.
필자는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을 제일 싫어하지만, 정치인의 말은 다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도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지켜봐야만 한다.
첫 번째 번복은 단식이라는 극단적 신체 상황이 그의 입을 여는 것을 막았다.
이제 두 번째 번복이다. 부디 이재명 대표, 혹은 지도부가 당론 파기에 대한 충분한 설명, 혹은 사과에 준하는 말을 하길 바란다.
그리고, 두 번째 번복이 아무 말 없이 넘어가더라도, 세 번째 번복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필자는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고쳐야만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기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어떻게 이기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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