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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과와 망징 : 나라가 망할 10가지 징조에 관하여

회의는춤춘다 회의는춤춘다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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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니 민갤에 이런 재밌는 글이 올라왔더군요.

 

제목은 '한비자의 '나라가 망하는 징조' 10가지'입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minjudang&no=1171897&exception_mode=recommend&page=2

 

 

 

 

 

첫째, 법(法)을 소홀이 하고 음모와 계략에만 힘쓴다.

 

둘째, 선비들이 논쟁만 즐긴다. 그리고 상인들은 나라 밖에 재물을 쌓아두고 대신들은 개인적인 이권만을 취택한다

 

셋째, 군주가 누각이나 연못을 좋아한다. 또한 대형 토목공사를 일으켜 국고를 탕진(蕩盡)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넷째, 지적하여 비난하는 자의 벼슬이 높고 낮은 것에 근거하여 의견을 듣는다. 그리고 여러 사람 말을 견주어 판단하지 않으며,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 의견만을 받아들여 참고를 삼는다

 

다섯째, 군주가 고집이 센 성격으로 간언은 듣지 않는다. 그리고 승부에 집착하여 제 멋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여섯째, 다른 나라와의 동맹만 믿고 이웃의 적을 가볍게 생각한다.

 

일곱째, 나라 안의 인재는 쓰지 않고 나라 밖에서 온 사람을 등용한다

 

여덟째, 군주가 대범하여 뉘우침이 없다. 그리고 나라가 혼란해도 자신은 재능이 많다고 여긴다. 또한 나라 안 상황에는 어두우면서 이웃적국을 경계하지 않는다.

 

아홉째, 세력가의 천거받은 사람은 등용되고, 나라에 공을 세운 지사는 내쫓는다. 그리고 국가에 대한 공헌은 무시되어 아는 사람만 등용되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

 

열째, 나라의 창고는 텅 비어 빚더미에 있는데 권세자의 창고는 가득 찬다.

 

 

 

 

 

 

 

역시 전국시대의 가장 세심한 정치사상가 가운데 하나라 할 만합니다. 국가의 쇠망에 관한 통찰이 엿보이지요.

 

제자백가의 사상은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피부에 크게 와닿게 됩니다.

 

시기가 시기이다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무슨 도전과제 깨듯이 지금 다 달성하고 있단 댓글이 인상적이네요.

 

 

 

 

 

 

그런데 이런 문구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경우, 그것이 정말 원전에 근거한 것인지 출처를 세심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이 '열 가지 망국의 징조'의 경우, 이번 윤 정부 때부터 처음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이래 국가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간혹 이야깃거리가 된 바 있습니다.

 

즉, 한비자의 열 가지 망징은 이미 하나의 템플릿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이 미친 짓을 할 때마다 소환되는 템플릿인 것이죠.

 

이때, 그런 템플릿이 되었을 만큼 범용성이 높은 글,

 

특히 '우와, 어떻게 그 옛날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지? 요즘 시국에도 딱 맞네!' 싶은 글들은

 

오히려 그만큼 필요에 의해 끼워맞추어지거나 가공을 거친 글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의 세태에 더 정확히 들어맞는 비판을 위해서 원본의 특정 부분이 강조되거나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과연 이 '열 가지 망국의 징조'란 한비자에 실제로 등장하는 구절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절반 정도가 맞습니다.

 

뭐야, 그럼 반 정도는 거짓이었단 말이야?

 

그건 또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한비자는 망징(亡徵) 편에서 나라가 망할 징조를 논한 적이 있지만,

 

그 종류가 10개가 아니라 무려 47개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47개 중 가장 앞에서 언급된 것들을 위주로 하되,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설득력 있었던 것을 추려서 넣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47개 중 5번째로 나오는 징조의 경우 군주가 미신을 믿으면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템플릿이 윤 정권을 비판할 용도로 만들어졌다면 이것은 반드시 들어갔겠지만 템플릿이 처음 유행했을 당시의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빠졌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인터넷에 도는 템플릿에서는 하필 47개를 10가지로 줄였을까?

 

그 이유까지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추측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한비자》에서 특정 주제를 10가지의 세목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존재하긴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군주의 통치에서 주의해야 할 10가지 과실, 십과(十過) 편입니다.

 

즉, 이 템플릿의 원작자는 《한비자》 속 십과와 망징을 혼동해서, 나라가 망하는 징조가 10개가 있다고 헷갈렸거나, 십과처럼 10개만 제시하는 편이 글의 구성상 좋다고 생각해서 10개를 추출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중 후자의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다시 말해 47가지 망징 중, 중요한 것을 십과처럼 10가지로 추려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에 내용상 《한비자》와 유달리 상충되는 부분이 있지는 않습니다.

 

 

 

 

 

 

3줄요약

 

1. 《한비자》에서는 군주의 열 가지 잘못인 십과, 국가가 망할 47가지의 징조인 망징을 논했다.

 

2. 인터넷에 가끔 떠도는 '한비자의 나라가 망하는 10가지 징조' 템플릿의 경우, 십과의 10가지 조목을 옮겨 쓴 것이 아니고 망징 중 10가지를 옮긴 것이다. 즉 판본의 형식면에서는 다소 혼동이 생길 수 있으나, 없는 내용을 꾸며 쓴 것이 아니라 《한비자》에 실제로 들어 있는 구절을 옮긴 것이다.

 

3. 저 10가지 징조를 충족한다면 《한비자》 관점에서는 욕 먹을 일임에 분명하다.

 

 

 

 

말 나온 김에 청음에 이 십과와 망징에 대한 내용을 글로 써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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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가 말한 47개 중엔 현대에 적용하기 곤란한 것들도 있어서 추리는 게 아주 나쁘단 생각은 안 듭니다. 어쨋든 저 정도면 핵심 중 핵심을 잘 뽑았다고 봅니다.

22.07.15.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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