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무대에서 웃음거리가 된 윤
동지사 성세창은 아뢰기를,
"중국 사람들이 우리 나라 사람들을 우대하는 것은 우리 나라에 와서 보고 그러한 것만은 아닙니다. 사신 및 서장관 등이 서로 교대하는 사이에 모두 예법을 지켜 행동하기 때문에 그들도 우리에게 도리를 지켜 대우하여 다른 나라 사람과 같지 않게 한 것입니다. 근래 사신을 택하기를 분명하게 하지 않아서 사신들이 실수가 있으면 중국에서 또한 이들의 대우를 매우 경홀히 하니 모름지기 가려서 임명해야 합니다."
하고, 집의 한숙은 아뢰기를,
"지난번 신이 방윤과 함께 연경에 갔었습니다. 황색과 자색은 중국에서 금하는 것이므로 우리 나라 사람은 본시 가지고 가지 않고 한결같이 검은색 옷을 입었으며, 중국에서는 갓끈을 달지 않으므로 우리는 실로 된 갓끈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방윤은 성질이 고집스러워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도중에서나 북경에서나 검은 옷을 입지 않고 혹 자의를 입기도 하고 혹 백의를 입기도 하는 등 오직 자기 좋은 대로만 하였습니다. 방윤은 무부라 할지라도 품계가 2품에 이르렀는데도 오히려 사체를 알지 못함이 이러했습니다. 지난번 무인이 연경에 갔을 때 화인들의 웃음거리가 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무반 사람을 보내지 않을 수는 없으나 그 가운데서 택하여 보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일렀다.
"대저 무인들이 사체를 알지 못하므로 이러한 것이다. 금후로는 문관을 주로 임명해 보내야 할 것이다."
조선 중종 33년(1538)의 기록입니다. 무관 출신이었던 방윤이라는 신하가 예법을 어겨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방윤은 이전에도 술을 좋아해서 경거망동하였다고 대간이 탄핵하였는데, 무관으로서는 무재가 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발탁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정치 얘기 대신 조선 역사 이야기를 하니, 속이 썩지 않고 마음이 편해서 정말 좋습니다.
그 때도 강대국과의 관계 설정으로 고민했고, 그 때도 기존 정치세력과 신진 세력 간의 갈등이 있었고, 그 때도 국가지도자와 신하들 간의 의견다툼이 있었죠.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역시 사람 사는 모습은 다들 비슷하구나를 느끼는데, 네이버댓글을 들어가보면 아직도 조선은 유교탈레반을 외치네요 ㅎㅎ 니네가 그러고도 한국인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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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결국 시민들이 계속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기득권들은 결국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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